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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은 짝수 해, 큰불은 홀수 해
산불은 짝수 해, 큰불은 홀수 해
  • 송종복
  • 승인 2017.05.16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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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1967년에 산림청이 발족해 “산이 푸르러야 물이 맑고, 또 물이 맑아야 인정이 두텁다고 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강산을 잘 가꿔 우리의 뒤를 이을 자자손손에게 보다 살찌고 보다 아름다운 강토를 물려주자”라며 산불방지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산불은 여전했다. 매년 산불은 동해안 지역이 39건(56%)이며, 주로 4~5월에 46건(73%)으로 가장 많다. 그런데 대부분 짝수 해에 발생했으며, 홀수 해에 발생하면 대형 산불에 재해가 컸다.

 <조선실록>의 1489년(성종 20) 3월 25일 강원도 양양에서, <승정원일기>의 1643년(인조 21) 4월 20일에도 강원도 양양에서 불이났다. 1672년(현종 13)에 강원도 동해안 산불은 6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비변사등록>의 1699년(숙종 25) 7월 17일에 전북 변산에서, 1794년(정조 13) 5월 14일에 경북 영일, 경남 밀양과 양산에서 큰 산불이 일어났다. 1804년(순조 4)에 강원도 동해안에서 사상 제일 큰 산불이 일어났다. 이때 사망자 61명, 민가 2천600호, 원우(서원, 사우, 영당) 3곳, 사찰 6곳, 창사 1곳, 각종 곡식 600석, 배 12척, 염분 12좌가 소실됐다.

 한때는 울산 ‘봉대산’에서 7년간(1994~2011)이나 계속 일어났는데, 이는 고의로 산불을 낸 일명 ‘봉대산 불 다람쥐’인 방화범을 잡았다. 포상금은 3억인데 이를 제보했다고 주장하는 주민이 많아서 아직까지 포상금 수령자를 선정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2006년 4월 30일 충남 공주에서 난 산불은 북한의 김정일이 낸 산불이라고 북한에서 주장한 병맛(내용과 말이 맞지 아니한 만화를 지칭)이다. 즉, 북한 김정일이 ‘축시법’을 사용해 한ㆍ미 연합군훈련 때 미군 군용기를 조종해 추락시켜 산불을 냈다는 설도 있었다.

 근래에는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에 종종 산불을 지른다. 우리도 이를 막기 위해 맞불을 지르기도 한다. 경기도 동두천에는 ‘산불 진화 순직자 추모탑’을 세웠다. 이 탑은 1996년 4월 23일에 경기도 동두천 생연동 산113번지에 산불을 진화하다 순직한 산림 계장 외 공익근무요원 6명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공적을 후손에게 길이 전하기 위해 건립한 탑이다.

 그런데 산불은 짝수 해에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난 1524년 3월 강릉 경포대산불, 1660년 3월 삼척산불, 1860년 고성산불(이하 강원도 고성군), 1878년 4월 고성산불, 1980년 양양과 고성산불, 1986년 강릉과 고성산불, 1994년 삼척산불, 1996년 고성산불, 1998년 양양산불, 2000년 강원도 고성, 동해, 삼척과 경북 울진 등 주로 동해안 지역의 백두대간에서 많이 일어났다.

 반면 홀수 해에는 주로 대형 산불이 일어나며 재화도 대단히 컸다는 것이 이례적이다. 2005년의 양양 낙산사에서 일어난 불은 불길은 마치 미사일처럼 200~300m씩 불꽃들이 날아다녔다. 2013년 3월 9일에 경북 포항에서 큰 산불이 나서 사망자가 10여 명, 이재민이 100명이나 발생했다. 2017년 5월 6일에도 강릉에서 큰 산불이 일어나 사상자가 3명, 주택이 10여 가구 소실됐다. 이같이 산불은 바람과 같이 타오를 때 헬기의 방수는 조족지혈이니 새로운 화학약품을 사용하거나, 맞불로 막아내는 방법을 강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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