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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하는 권위적인 중국 태도
한국 대하는 권위적인 중국 태도
  • 경남매일
  • 승인 2017.05.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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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시진핑 주석과 한국 특사단이 접견하면서 자리 배치 문제를 두고 뒷말이 많은 모양이다.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대형 테이블 가운데 자리하고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한 한국 특사단은 시 주석 오른쪽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양 국무위원을 비롯한 중국 측 인사들이 배치됐다. 특사의 경우 한 나라 정상을 대신하는 역할이어서 통상 대등하게 마주 앉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다. 실제 지난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환담했다. 2013년 1월 박근혜 당선인 특사 자격으로 방중한 김무성 의원이 시진핑 당시 총서기와 면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해찬 전 총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한 참석자는 “한국을 아래로 보는 것 같다”라면서 “시 주석의 권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이것은 중국 역사를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은 전한 말부터 후한 말까지만 보더라도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있었다. 이들 중에서 군사력이 강한 대국의 임금을 황제라 불렀고, 힘이 약한 소국들은 일반적으로 제후 또는 왕이라 불렀다. 초(楚), 연(燕), 제(濟), 한(韓), 위(魏) 조(趙) 등 여러 소국들을 통일한 진(秦)나라 임금을 시황제라고 부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후한 말에는 사마의가 위(魏), 촉(蜀) 오(吳) 삼국을 통일해 진(晉)나라를 건국해 주변국을 소국(제후)으로 다스렸다. 그 후에도 중국의 나라들은 중화관에 입각해 주변국들에게 고구려를 자기네들의 신하인 양 책봉을 내렸다. 조선 초기 명나라와 실질적으로 유대를 맺게 되는 것은 조공과 회사(回賜)의 형식을 통한 양국 간의 접촉에서였다. 파견하던 사행(使行)에는 일정한 액수의 공물을 바쳐야 됐다. 중요한 것으로는 금은(金銀), 마필(馬匹)ㆍ인삼, 저포(苧布), 마포(麻布), 석자류(席子類), 호피(虎皮), 나전(螺銓) 등이며 때에 따라 처녀와 환관의 요구도 있었다.

 이 중에서 국내 생산이 부족한 금은의 세공은 큰 부담이 돼 국내에서는 함경도 단천(端川)의 금광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채광을 장려하며 민간의 사용을 제안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자 금은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대신 다른 토산물을 바칠 것을 간청해 세종 때에는 마필(馬匹), 포자(布子)로써 대납하게 됐다. 조공에 대한 명나라에 회사품으로는 각종의 견직, 약재, 서적, 문방구 등이었다. 이와 같은 관무역 외에 사신이 서로 내왕할 때마다 북경에서는 회동관, 서울에서는 태평관에서 두 나라 사이의 사무역이 행해졌다. 명나라에 조공을 하기 위해 국내의 물산을 거둬들이며, 아울러 명나라의 우수한 물산이 국내에 들어오게 됨에 따라 국내 산업은 위축되고, 금은ㆍ인삼 등을 비롯한 각종 무역의 통제는 일반적으로 상업 활동을 침체하게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군신(君臣) 관계의 국가관을 역사에서 배우며 자란 중국인들이 한국을 힘없는 소국으로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에서는 원병을 보내어 일본군을 격퇴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준 것도 한국을 신하의 나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군신 관계의 통치 이념은 주변국들의 분노를 유발시켜 오히려 소국들의 군사력을 키워 자멸의 길을 초래하기도 했다. 누루하치가 세운 후금(後金: 淸)에게 공격을 당한 명나라의 패망이 대표적인 사례다. 청나라 역시 자기 나라는 군주요, 조선은 신하의 나라로 생각했다. 그래서 국교를 맺지 않고도 불복하자 조선을 침범했다(병자호란). 이처럼 중국은 주변 소국들을 마치 신하의 나라로 생각해 복종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영토를 병합했다. 한국전쟁으로 국제사회가 전쟁에 몰입된 사이 디베트를 무력 공격해 합병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중국의 이러한 오만한 태도를 꺾으려면 이스라엘처럼 나라의 힘이 강해야 한다. 중국은 지금 여유토강(茹柔吐剛)을 구사하고 있다. 즉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약하다. 한국은 얕잡아 보고 미국은 두려워 미소를 짓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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