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1:31 (금)
잃어버린 잠
잃어버린 잠
  • 경남매일
  • 승인 2017.05.23 2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주옥 수필가
 잠처럼 달콤한 것도 없고 또한 눈꺼풀만큼 무거운 것도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모두 잠, 즉 수면과 관련된 말이다. 그만큼 잠이 우리 신체 리듬이나 생활리듬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일정하게 돌아가는 삶의 연속. 인간의 몸은 일정한 탬포와 순환으로 체력을 유지하고 호흡한다. 건강한 생체리듬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균형에 의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대체적으로 잠을 잘 자는 편이다. 주변에 수면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큰 복이냐고 부러워할 정도다. 만사 제치고 잠을 자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의지를 어디서나 펼친다. 좀처럼 늦은 시간에 활동하지 않고 심지어 여행을 가도 제시간에 자야 할 정도로 잠에 관한 내 의지는 확고하다. 어쩌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겪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알기에 여간해서는 잠을 포기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거의 철인처럼 보인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한 두 시간 거리로 출근을 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직장에서 또는 거리에서 지내다가 또 밤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거나 아예 밤을 밝히고도 다음 날 일상을 이어간다. 도대체 잠은 언제 자는지 다들 로봇 같다.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잠(sleep)과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다. 사는 게 바쁘고 다분한 스트레스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단잠을 자도록 하는 수면 관련 사업에서 나온 신조어다. 이해하기 쉬운 상품으로는 수면 안대나 아이 마스크, 스팀 패치 등이다. 그 사업 규모가 2조 원 대에 육박한다니 사람에게 수면이 얼마나 절박하고 중요한 일인지 역설적인 증거다. 또한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단잠을 잘 수 있는 굿나잇 존(Good night zone)도 성행한다고 한다. 우리는 어쩌다 이런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잠을 자야 할 정도로 삶이 절박해졌을까.

 늘 잠에 대해 갈증이 있는 현대인들은 따로 수면제를 먹거나 맞춤형으로 생체리듬을 조절한다. 또한 점심시간을 이용해 밥은 굶은 채 따로 비용을 치러야 하는 수면실에서 쪽잠으로 부족한 잠을 잔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건강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늘 의문을 품을 뿐이다. 그러다 혹여 쉬는 날이 있어도 또 그 나름의 시간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또다시 잠들지 못하니 몸과 정신이 피폐해질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학창시절, 하루 서너 시간의 잠만으로 이뤄내야 할 일이란 고작 시험 기간이 전부였다. 어쩌다 밤을 새워서 공부한 날이면 그저 불가능의 경계를 뛰어넘은 것처럼 뿌듯하기까지 했다. 또한 그 시절엔 딱히 누려야 할 밤 문화도 없었다. 기껏해야 볼륨 낮춘 라디오를 듣거나 작은 스탠드 아래서 조용히 책을 읽는 정도였다. 하지만 잠을 온전하게 자고 개운한 몸으로 일어나 하루를 이어가는 질서 있는 생활을 했기에 오히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했는지 모른다. 단순하게 게을렀다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잠 한 시간 더 자고 덜 자는 것에 따라서 인생이 바뀐다고, 권장 아닌 위협을 한다.

 언젠가부터 세상은 밤이 사라지고 하루 종일 깨어있는 낮만 존재하는 듯하다. 하루 종일 TV도 볼 수 있고 스마트 폰에 중독된 사람들은 잠들 시간이 지나도 손에서 놓지 못한다. 거리의 불빛은 꺼질 줄 모르고 차들도 밤새 달린다. 모두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생활 소음들도 마찬가지다. 새벽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 윗집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심지어 화장실의 물 내리는 소리까지 세상은 잠시도 고요하지 않고 잠 못 들게 한다. 온종일 불이 꺼지지 않는 세상은 사람들에게 수면을 빼앗고 잠을 놓친 사람들은 일상의 평화와 건강을 뺏긴 채 생기 없는 눈만 끔벅거리고 있다. 아니, 밤낮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무위도식에 낙오자처럼 인식되는 병폐 아닌 병폐마저 생겼다. 빼앗기고 잃어버린 잠. 그것마저도 손 내밀어 얻어야 하는 힘겨운 세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