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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과 비움 그리고 포용
버림과 비움 그리고 포용
  • 이광수
  • 승인 2017.05.28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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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5월 23일 화요일 김해 봉화마을. 새 대통령이 참석한 고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5만여 참배객들로 가득했다. 한편,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된 전 대통령의 재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화장기 없는 초췌한 민낯으로 재판정에 나온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니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최고의 지위에 있던 자의 추락한 모습에 유구무언 인생무상을 느꼈다. 승자와 패자의 엇갈린 운명의 장난인가. 아님 민심을 거역한 권력자에 대한 국민의 단죄인가. 그 해답은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 역사라는 이름으로 평가돼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버림=영광, 버팀=치욕’ 이것은 본보가 지난 24일 정치면 머리기사로 뽑은 타이틀이다. ‘노무현ㆍ박근혜 엇갈린 운명의 날’로 부제를 단 레이아웃을 보니 권력 무상과 인생유전을 더욱 실감케 했다. 문득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떠올랐다. 버리고 비움으로써 ‘참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 스님의 말씀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나는 보수적이지만 경도된 보수주의자도 극단적 진보주의자도 경계한다. 21세기는 바야흐로 좌도 우도, 극단적 보수와 진보도 용납하지 않는 통섭의 시대이다. 학문에서도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의 경계가 무너져 이론만 존재할 뿐 그 실체조차 규명하기가 모호해졌다. 글로벌 트렌드는 개방과 개혁이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시발점으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신고립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반동일 뿐 열린 세계를 맛본 민중의 저항에 부딪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승리감에 도취돼 자기 먹을 것에만 정신을 팔고 있으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마귀의 우화처럼 축제는 언젠가 반드시 끝나기 마련이다. 지난 정부는 대도(大道)가 아닌 협량(狹量)의 도그마에 빠져 민심을 읽지 못한 채 재방(在傍)의 소리만 믿고 독주한 결과 오늘의 추락을 자초했다. 새 정부가 실패한 정치의 본보기로 삼아야 할 역사적 교훈이다. 지금 새 정부를 이끌어갈 조직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많을 것 같았던 인재도 적임자를 찾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국회 청문 대상이 되는 장관급 후보자는 더욱 그렇다. 이런 권력대열에 동참해 보겠다고 자천타천 구름처럼 몰려든 정치꾼과 폴리페스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지만 막상 적재적소에 맞는 인물은 의외로 드물다. 혹여 정권창출의 논공행상에 도취한 나머지 참모진의 지당하심과 황공무지에 매몰됐다간 역대 정권의 전철을 또 반복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소신 있게 ‘노’라고 직언할 수 있는 아웃사이드를 지근에 두지 않으면 후회막급이다. 권력의 속성상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쓴소리보다 달콤한 간언에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조석변이라고 열 가지 잘하다 한 가지 만 잘 못 해도 민심은 돌아선다. 기대가 크면 실망 또한 큰 법이다. 지금 너도나도 “저요! 저요!”를 외치고 있다. 그 외침이 묵살되거나 외면받으면 민심은 이반된다. 언론이 부추기고, SNS가 날개를 달아 퍼 나르며 가짜뉴스까지 등장해 여론몰이에 나선다. 특히 금방 끓었다 식는 냄비근성이 강한 우리 국민의 조급성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한국인의 특성이다. 물론 그 점이 우리나라를 최빈국에서 세계 유수의 경제 강국으로 도약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게 한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누군가 양심이 아픈 게 아니라 욕심이 아픈 것이며, 문제를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심을 버리고 정도를 걷되 긍휼의 포용심을 발휘하라는 뜻이다.

 새로 권력을 쥔 자의 제1 덕목은 승자로서의 탕탕 평평 포용력이다. 승리의 기쁨에 도취돼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게 되면 민심은 이반되기 마련이다. 협치와 통합의 기치를 내건 새 지도자의 담대한 그릇으로 지난날의 공과를 냉철히 판단해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현명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국민의 심판으로 단죄의 법정에 선 패자는 지난날의 과오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하는 길만이 추락한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을 옥죄었던 아집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때 비로소 새롭게 거듭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버림=영광, 버팀=치욕’이라는 대칭적 주제가 새삼 가슴을 치며 다가온다. 작은 약속이 세상을 살맛 나게 바꾼다고 했다. 왕을 향한 쓴소리인 ‘임금은 듣고, 참고, 품는 것’이라는 금언을 새삼 음미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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