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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유산
푸른 유산
  • 이주옥
  • 승인 2017.05.30 1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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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해마다 봄철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뉴스가 있다. 바로 산불 발화 소식이다. 특히 산이 많은 지역인 강원도는 연례행사처럼 산불로 인한 진통을 겪는다. 얼마 전 강원도 강릉 삼척 구간에서 일어난 산불. 그 불로 인해서 이재민이 100여 명 발생했고 피해액은 770억이었다. 불타버린 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115배라니 가히 상상이 안 될 정도다.

 난 개인적으로 자연재해 중 가장 안타까운 일은 산불이라고 생각한다. 한 그루 나무를 심어 그 나무가 자라서 울창한 산림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 보라. 그 긴 시간의 여울이 작은 불씨 하나로 순식간에 황폐화 돼버리는 것을 보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탄식이 나온다.

 산불은 대부분 사람들의 실화(失火)로 일어난다. 무심히 버린 담배꽁초 한 개, 무심히 버린 기름 먹은 휴지 한 장으로 길게는 천년 세월의 결과물이 잿더미가 되는 일, 이처럼 허망한 일이 또 있겠는가.

 산불의 진화는 일반적인 건물이나 집들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일단 불을 끌 수 있는 물 공급도 수월치 않고 진화작업을 하는 인원동원도 기하급수적으로 필요하다. 또 거기에 바람 등 자연적인 제반 조건이 도움을 주지 않으면 불길 잡는 데 길게는 보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불이 붙으면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조건이 바로 날씨다. 특히 건조한 봄은 불이 붙었다 하면 쉽게 불길을 머금는 마른 나뭇가지들이 산재해있고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을 때이기 때문에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바람까지 부채질을 하면 인간들은 대책 없이 발만 동동 구르며 불길에 조롱당할 수밖에 없다. 화마는 거칠고 무섭게 불길을 품는다. 헬기가 수백 대 동원돼서 거센 물줄기를 뿜어내도 성난 불길은 쉽게 무릎 꿇지 않는다. 불에 타버린 산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는 나무는 30년에서 50년, 토양이 제 숨결을 찾는 데는 무려 10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인공적이든 자연적이든 수많은 재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인간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해에 철저하게 노출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이 닥쳐오면 우리는 어떻게도 저항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와 있는지도 모른다. 각종 첨단장비가 갖춰지고 과학적인 설계를 갖췄다 해도 그 장비들을 무력(無力)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순간적인 방심이다.

 잘 훈련된 소방관들이 직무에 충실하다고 해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처리해 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늑장 대응을 비난하고 간혹 책임자가 경질당하는 것을 볼 때 난감하고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모두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자리한다.

 화마가 훑고 지나간 자리는 참혹하다. 푸르고 무성하던 나무들은 흔적 없고 보기에도 흉측한 검은 재로 뒤덮인 땅만 남는다. 거기에 다시 나무를 심은들 제대로 자랄 리도 없고 둥지를 잃어버린 새와 짐승들은 헐벗고 굶주린다. 보릿고개 시절에도 입에 풀칠은 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먹거리의 보고(寶庫)인 산. 그 산이 어느 한순간의 실수로 민둥산이 되고 삭막해지고 만다.

 사계절 내내 동네 산에서부터 국내 유명 산엔 사람들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 사람들이 산을 찾는 이유는 갈수록 팍팍해져 가는 일상에 청신한 바람이 그리워서 일 것이다. 나무가 뿜어내는 청결한 공기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고 싶어서 일 것이다.

 유난히 푸르고 울창한 한국의 다정한 산들. 그 산이 작은 불씨로 잿더미가 되는 것은 모두 사람들의 부주의 탓이다. 간직해야 할 많은 것들이 사람들의 무관심과 방치로 본질을 잃어가고 사라져가고 있다. 무엇보다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산만큼은 제대로 보존하고 가꿔서 우리 자손들에게 푸른 유산으로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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