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보자.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사실 담배 피우는 건 생각하기도 싫다. 그런데 당신은 담배를 피우고 담배에 대한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해 보자.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신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고 당신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수께서는 관용을 베풀라고 가르쳤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동성애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나타내야 하는 게 맞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 생활 방식이나 받아들여도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요한 3:16) 예수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도덕 규범을 따르는 것이다. 그 도덕 규범에서 금하는 일부 행위에는 동성애도 포함돼 있다. (로마 1:26, 27) 성서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동성애자가 되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하지만 깊이 뿌리박힌 경향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는 한다. (고린도 후서 10:4, 5) 물론 동성에게 이끌리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성서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동성애 행위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성애 욕구가 생기는 원인을 놓고 옥신각신할 것이 아니라, 성서에서 금하는 것은 동성애 행위임을 강조한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유전적 요인 때문에 폭력적인 경향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 (잠언 29:22)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떨까? 성서에서는 화를 터트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시 37:8; 에베소 4:31) 폭력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고 해서 화를 터트리지 말라는 성서의 법이 부당한 것일까? 어떻게 하느님께서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에게 동성애를 금하실 수 있는가? 그건 너무 가혹한 것 같다는 생각에는 인간이 자신의 성적 충동대로 행동해야만 한다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성서는 인간이 정말로 원한다면 부적절한 성적 충동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역량을 가진 품위 있는 존재라고 알려 준다. (골로새 3:5)
나는 도박을 좋지 않게 생각하지만 당신은 괜찮게 여긴다고 가정해 보자. 도박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당신이 나한테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한다면 그게 합리적인 일일까? 동성애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정도 윤리관이 있기 때문에 사기, 불공정, 전쟁과 같은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서는 그러한 것을 금할 뿐만 아니라 동성애를 포함한 특정한 성행위에 대해서도 명백히 선을 긋는다. (고린도 전서 6:9, 10) 성서의 말씀은 비합리적이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동성에게 끌리는 사람과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 모두에게 “음행을 피하라”는 동일한 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 6:18) 사실 이성애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성서의 표준에 따라 생활하기 위해 유혹이 되는 다양한 상황에서 자제를 나타낸다. 그중에는 결혼할 가능성이 많지 않은 독신을 비롯해서 장애로 인해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한 배우자와 사는 기혼자도 있다. 그들은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동성에게 이끌리는 사람도 진정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신명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