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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데 있는 인문학
쓸 데 있는 인문학
  • 이주옥
  • 승인 2017.06.13 2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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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2000년대 후반부터 인문학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경기불황이 지속되자 인류발전은 단순히 기술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생각으로 좁혀갔다. 음악, 음식, 여행, 정치, 문학 등 깊이 있고 다양한 장르로 사람들의 마음을 개발하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전환 모색이 필요했던 것이다.

 서점가에는 인문학 관련 서적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작은 도서관 교양강좌 프로그램에도 인문학 강의는 필수였다.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던 각계 전문가들이 온라인으로 나오고 그로 인해 스타강사도 생겼다.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목말랐던 사람들은 그들의 강의에 동감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인문학(人文學)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동안 세계 경제발달의 일등공신은 솔직히 휴머니즘보다는 테크놀러지였다. 나라마다 앞뒤 잴 것 없이 기술개발에 주력했고 그에 걸맞게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어느 날 기술개발에 의존한 경제발전에는 한계와 권태를 느꼈을까. 아니 더욱 근본적인 발전을 위한 도움닫기로 인문학 필요성을 절감했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기술력에 교양과목과 인문학이 결합된 기술이야말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결과를 만든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이 그 도화선이 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선각자다운 비전이며 깨우침이었다.

 평상시에 막연히 알고 있으나 넘어가던 것, 필요했으나 없어도 됐던 것들에 눈을 돌리고 생각의 징검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호기심일 수 있는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이 새삼스럽게 화두가 되는 것들이 넓고 얇고 지식이라는 대명제가 된 것이다. 지적인 대화의 매개가 된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 종편에 신설된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있다. 물리학 박사와 유명작가가 나와서 특정 지역을 여행하면서 가볍게, 때로는 진지하게 나누는 예능 인문학이다. 그냥 지나쳤던 사물이나 생각들이 그들의 지식을 통해 전파를 탔고 일부 시청자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고 있는 것 같다. 관심이 없어서, 때론 너무 사소해서 지나쳤던 문제들, 그들이 술자리에서 잡담처럼 하는 이야기들에 사람들이 집중을 한 것이다. 그동안 인문학은 학문이라는 프레임 안에 놓여 있어서 주제가 무겁고 일반인의 참여가 약간은 어려운 면이 있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남 이야기에 불과했고 다소 호불호가 있었던 학문이 조금 가벼운 소재와 주제를 선택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계기가 된 것이다.

 지식은 학벌이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라도 관심과 노력으로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술자리에 앉아 수다를 가장한 전문지식을 이야기하고 슬쩍 지나치는 한마디에 학문의 깊이를 담고 있으니 엿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를 졸업한 진행자는 시도 때도 없이 무릎을 치며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탄식을 하며 지식 부재를 내비친다. 하지만 패널과 시청자들은 그 방면에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니 그 정도까지 알 필요는 없다는 말로 그의 탄식을 보듬고 본인조차도 자신의 얕은 지식에 너그러워진다. 시청자 또한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편안해진다.

 예능으로 점차 확산되는 무거운 인문학은 이제 다수의 학자들에게 학문이 너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러저러한 진통으로 한때의 붐으로 끝날지 아니면 이때를 기점으로 좀 더 대중에게 쉽게 다가드는 학문으로서 자리매김할지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느 형태든지 지적 호기심을 채울 권리가 있고 배울 자격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지적이고 성숙한 국민을 위한 열린 강의실이 되기 바라며 아울러 기술에 의존한 경제발전만을 배제하고 진정한 휴머니즘과 기술이 결합된 진정 사람을 위한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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