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9:49 (토)
불륜이 로맨스가 될 때…
불륜이 로맨스가 될 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7.06.15 2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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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이 해괴한 조어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성싶다.
▲ 류한열 편집부국장
  사람은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 기술을 써야 한다. 중요한 기술을 발휘 못 하는 사람은 세상살이가 버겁다. 이 기술을 몇 개로 한정하긴 곤란하지만 ‘도구 쓰는 기술’과 ‘마음 쓰는 기술’로 나눠 보면 대응하기 쉽다. 수렵채취 시대엔 활이나 칼, 그물 등 도구를 써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지만 요즘 이런 거친 기술은 신통하지 못할 때가 많다. 차라리 펜 한 자루를 들고 글을 잘 쓰면 삶의 방편을 확실하게 마련할 수 있다. 글에 진심과 보편적 진실을 담으면 많은 사람들이 괜찮은 문장이라고 감탄한다. 명문에는 시대와 장소를 떠나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힘이 있다. 이런 글을 쓰기가 만만찮은 게 단점이다. 펜을 들든 붓을 들든 확실하게 기술을 갈고닦아 빛을 내야 세상 사는 데 힘을 받을 수 있다

 손에 든 도구를 잘 써 생존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대접을 받는다. 이에 반해 마음 쓰는 기술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세상살이가 편하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신이 정한 기준대로 살아간다. 강심장인 사람이라야 겨우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데 마음 기술이 뛰어난 사람은 순식간에 대응한다. 요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국회인사청문회에서 한 청문위원이 장관 후보자에게 “내로남불에 대해 들어봤냐”고 묻기까지 했다. 여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내정한 고위 공직자 18명 중 9명이 투기와 위장전입, 탈세, 병역 문제 등이 중복해 걸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로남불 인사 참사’라는 말까지 뱉었다. ‘내로남불’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계속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이 해괴망측한 조어가 싶게 사라지지 않을 성싶다.

 지금 정치판에는 로맨스와 불륜이 넘쳐나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여야가 바뀐 상황에서 야당 의원은 예전 불륜이 로맨스가 됐다고 혀를 찬다. 여당 의원은 천연덕스럽게 로맨스 타령하며 예전에 무슨 불륜이 있었느냐고 반문한다. 청와대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음주운전 이력과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을 먼저 언급하면서 사소한 흠이라고 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당시 같은 사안을 두고 정반대 입장을 내놓고 지금은 “무슨 그 정도를 가지고…”라며 이중 잣대를 휘두른다. 조국 민정수석은 박근혜 정부 때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이철성 경찰청장을 임명하자 음주 운전자는 청문회 대상조차 될 수 없다고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다. 새 정부에서는 불륜이 길어지면 로맨스가 된다는 이상한 사랑 타령이 넘친다.

 마음 쓰는 기술은 자신이 편한 대로 잣대를 아무 곳에 대는 게 핵심이다. 뭐든지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거칠 게 없다. 상황 논리를 들먹이는 사람은 세상을 참 편하게 살 수 있다. 잣대를 내팽개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은 마음 기술을 자기 멋대로 쓰는 사람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은 편한 대로 마음을 이쪽저쪽 흘려 놓지 않는다. 새 정부에서는 상식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얄밉다. 지나간 일을 뒤집고 잊어버리면 얼마나 편할까.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야당 시절 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이나 논문표절 등을 문제 삼았던 데 대해 사과했다. 덧붙인 말이 더 걸작이다. 위장전입 다 따지면 장관 하려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이 된다고. 내로남불이 넘쳐나면서 새 정부는 민심을 내세우고 있다. 문 대통령은 임명하면 협치 없다는 야당의 말을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수용 불가 입장을 보였다. 민심은 잣대를 바꾸라고 하지 않는다. 꼬인 상황 때문에 꼬인 민심은 퇴로를 찾아라고 일러줄 뿐이다.

 음주운전이 범죄라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음주운전을 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요즘은 공공의 적이다. 이런 인식 변화조차도 내로남불에 걸리면 여차 없이 뒤집어진다. 내로남불로 무장하면 마음 다스리기가 편하다. 이만큼 위세를 떨치는 도구는 없을 듯하다. ‘나는 안 되는데 남은 괜찮다’는 말을 되뇌면 열 받지 않을 사람은 없다. 뒤집어 ‘나는 괜찮은데 남은 안된다’고 말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은 양심에 화인이 찍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사청문회장 이곳저곳에 내로남불 투성이다. 이 그림자를 지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한 번만 불륜을 로맨스로 봐줘야 꼬인 청문회 정국이 풀릴 것 같다. 참 우스꽝스러운 세상이다. 눈 뜨고 불륜현장을 보면서 아름다운 로맨스 타령을 해야 하니. 보통 사람은 이번 기회에 마음 쓰는 기술을 하나 더 닦아야 한다. 불륜을 로맨스로 보는 기술 말이다. 아니면 정부가 나서 불륜을 로맨스로 보라는 캠페인을 벌일 수도 있겠다. “자, 오늘부터 음주운전, 세금 탈루, 입장전입은 파렴치한 불륜 같은 행위가 아니고, 애틋한 로맨스 같은 행위입니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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