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5:35 (금)
늙지 않는 모발 염색
늙지 않는 모발 염색
  • 신화남
  • 승인 2017.06.20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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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남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
 석가족의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고자 집을 나서 오랜 고행 끝에 해탈해 부처가 됐다. 이후 석가모니 부처를 따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은 해탈하려는 의지로 머리카락을 깎았다. 불가에서 머리카락은 인간의 번뇌를 상징하는 번뇌초 또는 무명초(無明草)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수행자들은 번뇌를 없애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삭발을 행했던 것이다.

 번뇌를 짊어진 중생들의 하얗게 센 머리카락은 세월의 흔적을 상징한다. 또한 대부분의 지식이 경험에 의해 구축되던 시대에는 노쇠해져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지만 인간의 수명 연장으로 사회활동 기간이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피부가 처지고 눈가에 잡힌 주름을 펴고자 시술을 감행하는가 하면, 흰 머리카락을 검게 바꾸는 염색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얼굴과 몸에 하는 화장과 마찬가지로 모발 염색 역시 원시 문명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염색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 셰쉬여왕(Queen Schesch)이 식물성 염료인 적갈색의 물감(Henna)으로 염색한 것에서 유래된다. 이 모발 염색은 이집트, 이스라엘, 앗시리아,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까지 퍼져 나가면서 사람들은 짙은 눈썹을 갖기 위해 눈썹과 속눈썹을 까맣게 칠하거나 염색을 했다고 한다. 특히 남자들은 헤나(Henna)로 수염, 두발 그리고 눈썹을 물들이기도 했다.

 19세기 유럽에서 산화 염모제가 개발되면서 모발염색은 본격적인 미용의 한 분야로 차지하게 됐다. 1818년 한 외과 의사에 의해 과산화수소는 소독작용 외에 탈색작용이 있다고 발표했다. 1863년 독일의 호프만이 PPD라는 산화 염료를 발명, 1883년 프랑스 모네 회사가 염모제로 허가를 받아 현대 염색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 시판용 염료가 개발은 됐지만 일반인들은 염색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못해 배우들이나 하는 정도로 한정됐다가 1950년대에 들어서 비로소 혁신적인 염색이 시작됐고, 1955년에는 흰머리 커버 염색약이 출시됐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대중매체의 활성화로 염색은 점차 대중화가 됐다.

 고대에는 염색을 종교적 의미로 또는 풍속적 습성으로 했다면, 오늘날 염색은 흰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사용돼 지기도 하지만, 개성을 연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저마다 미적 추구 본능에 따라 세련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컬러링(Coloring)이 계속 발전하는 이유는 패션의 토탈화와 색채문화의 발달, 자신의 개성표현,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모발 염색용 도구들은 모발 관리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1909년 한 영국 결혼식에서 당시 상무부 대표였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열 명 중 한 사람은 모발 염색을 하지 않고는 안 되겠죠”라고 농담을 하며 거기에 세금을 부과하면 대단한 수익을 낼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이전에는 우리나라 여성들 중 단지 7% 정도만이 모발 염색을 했던 반면, 1960년 후반, 미국 여성들은 거의 70% 정도가 자신의 머리색을 바꿨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오늘날에는 여성들의 75%에 가까운 수가 머리 염색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모발의 색은 모발 중에 함유돼 있는 멜라닌의 색소량에 따라 결정되며 이는 대부분 유전적인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천연 모발 색상은 모피질 층에서 발견되는 천연색소(Pigment)의 양과 분포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데 밝은 갈색 모발은 모피질 층에 노란 기가 있는 붉은 색소의 비율이 더 많은 것이며 짙은 갈색 모발은 검은 갈색 색소가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모발에 색소가 거의 없거나 완전히 없는 경우는 백발이 된다. 그러므로 백발은 색소의 이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인을 비롯해 중국, 일본, 타이 등 아시아 동부 국가 사람들의 모발 색은 유난히 어두운 계통인 반면,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밝은 금발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모발 색은 다양하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발 색은 색소비율에 따라 일반적으로 색상 단계를 10단계로 분류한다. 흑색계열 1, 2, 3단계, 갈색계열 4, 5, 6단계, 금색계열 7, 8, 9단계, 그리고 흰색이다. 그런데 인종 단위에서 개개인들은 그들 자신의 고유한 모발 색상에 대해 만족해하지 못해왔다. 이처럼 모발 색상 변화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은 곧 모발 염모제 시장의 끊임없는 새로운 상품 개발과 연구를 촉진시켜 왔다.

 값싸고 간편한 염색약 덕분에 오늘날에는 흰 머리카락을 그대로 두는 노인이 오히려 드물다. 사람은 늙었어도 머리카락이 세지 않은 것처럼 만들어주는 염색약은 사람이 늙어도 지혜로워지지 못하는 시대에 아주 잘 어울리는 위장수단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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