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7:35 (금)
‘내로남불’을 경계하며
‘내로남불’을 경계하며
  • 이광수
  • 승인 2017.06.25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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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요즘 국회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사자성어로 자리 잡을 만큼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뒤바뀐 정치 상황에서 자신들이 당했던 과거사에 대한 한풀이(?) 같은 ‘내로남불’이 그 도가 지나쳐 국론분열의 양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이다. 이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라고 한다. 본디 이 말은 1990년대 초 ‘불륜’이라는 말 대신 ‘스캔들(Scandal)’을 활용해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로 쓰여 졌다. 그 후 90년대 중 후반기부터 ‘내가 하면 숙달 운전, 남이 하면 얌체 운전’, ‘내가 못생긴 것은 개성, 남이 못생긴 것은 원죄’, ‘내가 땅 사면 투자. 남이 땅 사면 투기’, ‘내가 하면 예술, 남이 하면 외설‘, ‘내가 하면 오락, 남이 하면 도박’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돼 크게 유행했다. 이 말은 자신이 한 언행을 정당한 것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비꼬는 말이었다. 이처럼 만사를 비틀어 보는 시니컬한 말이 유행한 것은 1960년대 세계 최빈국에서 7~8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쳐 90년대 말 선진개도국으로 급부상한 한국경제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서구처럼 100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산업혁명을 이룬 것이 아니라 서양문물을 일찍 도입해 경제 대국이 된 일본의 발전에 자극받은 한국인의 시샘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단계를 생략한 압축성장의 부작용은 배금주의의 팽배와 함께 계층 간의 갈등과 대립을 심화시켰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우리 민족 특유의 시샘 문화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분발심과 기 살리기라는 긍정적인 명(明)이 있는가 하면, 남이 잘되는 것은 죽어도 못 보는 부정적인 암(暗)이 병존한다. 이러한 자기방어적 심리 기제의 발동은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고착화 됐다. 사회계층 간의 이동이 비교적 용이했던 70~90년대를 지나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무너지기 시작한 2천년대부터 자포자기적인 고립주의가 사회 전반에 만연되면서 갈등과 대립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전 정권이 국정농단사태로 탄핵을 당했지만 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견고한 골수 지지층은 지금의 진보를 의심의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진정한 의미의 중도보수와 진보가 뿌리내릴 텃밭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한국인의 행동 기제는 정치권의 동향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치풍향계의 향배에 따라 산업 전반은 물론 교육, 문화, 복지, 일상생활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리더가 교체되면 중앙이고 지방이고 하루아침에 정책이 바뀐다. 한국사회는 정치를 빼고는 되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치 지향적 사회이다. 하다못해 퇴근 후 포장마차에서 지인들과 나누는 술자리조차 정치 이야기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 신세다. 오가는 술잔 속에 나누는 대화는 특정 정치집단과 특정 정치인을 성토하며 잘근잘근 씹는 맛으로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SNS는 연일 수천개의 댓글로 도배질을 한다. 죽일 놈 살릴 놈은 신사적이고 입에 담지 못할 험담까지 퍼붓는다. 일배와 문빠로 갈린 보수와 진보의 맹신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입씨름으로 사회관계망을 달구고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불쑥 내지르고 보는 불뚝 성질은 우리 민족이 타고난 천성인 것 같다. 그리고 냄비처럼 펄펄 끓다가 국물이 채 우러나기도 전에 금방 식어버린다.

 ‘내로남불’의 허상이 자기 합리화라면 그 실상은 결코 남에게 지기 싫다는 자존심의 발로이다. 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나도 너를 인정해 주지 않겠다는 보상심리의 발동이다. 여기에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끼어들 틈새는 없다. 서양속담에 ‘주고받기(Give and Take)’가 있다. 그들은 베풀고 난 후 받는다는 철저한 애타 심리가 강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받고 주기(Take and Give)’식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 지배집단의 갈취와 핍박에 주눅이 든 민초들은 받지 않고 주는 것에 인색하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줘봤자 돌아오는 것은 수탈과 빈손이라는 피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내로남불’ 현상에 대해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내로남불은 불가피한 인간의 본성인 동시에 한계’라고 적시했다. 심리학자들은 ‘내로남불’은 자기보호라는 방어기제의 발동이라고 말한다. 이 말의 부정적 심리 기제가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정치권에서 타성적으로 반복 재현됨으로써 사회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여당은 무조건 옹호요, 야당은 무조건 반대라는 극단적인 정치행태는 역지사지가 설 자리를 잃게 하고 있다. 리더는 리더다워야 하고, 정치는 정치다워야 한다.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피투성이 싸움에서 얻은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이니까. 새 지도자가 외치는 협치는 염치라는 덕목이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정치판이 ‘내로남불’이 아닌 ‘내로남로’로 환골탈태하는 그 날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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