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전혀 생일과 무관한 전야제를 혼자만의 여흥으로 여과시켜 버렸고, 식목일과 겹쳐진 생일은 화려한 햇살을 받으며 고개를 들었다. “자기야 오늘 운동 갔다 와서 맛있는 것 해줄게.” 하더니만 땀을 폭포같이 쏟아도 해독이 안 된다며 낮잠을 밤잠같이 잔다. 집 전화 손 전화 모두 죽여 놓고, 사과를 먹고 잠이 든 숲속의 아줌마처럼. “이 사람이 진짜 서방님 생일이 마음에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비몽사몽 꿈에서도 미안한지 해거름이 다될 무렵 이부자리를 털며 “지금 팥을 담그면 퍼지겠나. 미역국에는 뭘 넣어야 하지. 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사다 줄게. 아니면 용돈을 좀 줄까. 필요한 것 있으면 생각해보세~용”이라고 말한다.
“참! 자기가 좋아하는 돼지국밥 한 그릇 사다 줄까.” 이건 또 무슨 잠꼬대인가.
대충 때우겠단 속셈이지. 갈수록 태산일세.
그날 저녁 정성스레 비닐봉지에 포장해온 돼지국밥으로 미역국을 대신해야만 했다. 서민들의 뱃속을 든든히 채워주던 스태미나 음식이 돼지국밥이 아니던가. 따끈한 국물 호호 불며 소주 한잔 곁들인다면 성찬이 부럽지 않다. 그러나 평상시와 달리 꼭 2%가 부족한 맛을 느꼈지만, 코앞에서 국물을 마구 들이키며 이제야 속이 풀린다는 아내를 바라보니 황송함이 절로 난다.
하루 깊숙이 서운함이 남아서일까. 뚝배기가 상그랗게 식을 때 비로소 그 내막을 알았다. 새우젓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을. 비록 국밥으로 대신한 생일상이지만 살다 보면 다부지게 한 상 차려 줄 날이 올 거란 기대에 또 일 년을 내다본다.
“어이! 딸내미. 요즘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아도 ‘아빠 생일축하 합니다’ 한마디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아! 오늘 아빠 생일이가.” 죄송하다며 간늦가 축하곡을 불러준다. 23시 30분에.
야! 인마. 백날 휴대폰에 저장해 놓으면 뭣 하냐 챙기지도 않을걸.
제 생일은 음력 양력 다 해 먹으려 들면서.
딸에게 엎드려 절 받은 생일은 그렇게 촛불이 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