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5:37 (수)
떠날 때와 머무를 때
떠날 때와 머무를 때
  • 이광수
  • 승인 2017.07.02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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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새 정부의 내각 구성을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보선이 실시되는 바람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없이 새 대통령 임기가 시작돼 장관후보자에 대한 자체인사검정이 다소 미흡했는지 국회 비준에 애를 먹고 있다. 몇몇 후보자의 청문 과정을 지켜보니 인격적으로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개인 신상에 흠결이 있으면 정작 청문의 핵심인 정책집행능력에 대한 검정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혼란의 반세기를 거친 한국사회에서 개인적인 흠집 없이 살아남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세상 흐름을 쫓다 보니 그땐 관행처럼 여겨졌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문제가 돼 자신을 옥죄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이 공약으로 5대 인사원칙을 내세우는 바람에 그것이 족쇄가 돼버린 것이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내건 공약은 실천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식으로 장밋빛 약속을 남발함에 따라, 흔히 말하는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기 일쑤다. 이것이 결국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대통령과 장관들의 티타임 광경을 보도한 사진을 봤다. 신임장관들은 대통령 가까이 앞줄에 서 있고, 아직 비준이 안 끝나 새 장관이 임명 안 된 자리는 전임 장관들이 뒷줄에 뻘쭘하게 서 있는 모습이 무척 어색해 보였다. 중앙정부나 지자체나 정무직은 자신을 임명한 수장이 교체되면 물러나는 것이 관례이고 예의다. 새 리더가 추구하는 정치이념과 정책 방향은 전임자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 탄생 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보니 기존의 각료 인선이나 청와대 참모진 인선과는 다르게 철저히 기득권 계층의 배제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 비판적이었던 사회단체장 출신과 대학의 총학 출신, 여당 국회의원,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인사 중심으로 코드를 맞추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정치개혁 의지의 반영으로 자신의 통치 철학을 잘 보좌할 수 있는 사람과 일하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신구 각료의 인선 과정에서 전 정권이 임명한 장관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장관 없다고 일 못 하는 것도 아니니 새 대통령이 선출되는 즉시 사표를 내고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업무인계인수에 따른 다소간의 시간은 필요하지만 새 장관이 임명될 때까지 어정쩡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이런 일은 중앙정부의 정무직 인사만 해당되는 사향이 아니다. 지자체의 경우도 수장이 물러나면 전임자가 낙점한 정무직도 물러나는 것이 도리다. 경남도의 경우 지사가 대통령 출마한다고 퇴임해서 부지사가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전 지사가 임명한 기관단체장들이 임기 보장을 들먹이며 자리를 고수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미 지역 언론사에서 거취문제를 거론했지만 마이동풍이다. 자리 욕심이 지나치다는 세간의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공직이나 사회단체장이나 조직의 리더는 진퇴가 분명해야 한다. 머무를 때와 떠날 때를 분간하지 못하고 자리에 연연하면 추해진다. 재직 중 좋았던 이미지는 결국 불명예스러운 퇴직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내가 소속한 문화예술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무보수 명예 자리인 장 자리에 연연해 정관을 고쳐 가면서까지 연임에 연연한다.

 떠날 때와 머무를 때가 분명하지 않으면 비록 그 자리에 머물 동안은 겉으로 소속직원들이 따르는 척할지 모르지만 속으로 뒷담화로 수군댈 것이다. 미련스럽게 버티면 결국 치욕으로 귀결된다. 나는 명예 단체장 자리는 단임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원칙론자이다. 아무리 리더십이 훌륭한 지도자일지라도 그 사람 좀 더 해야 한다고 아쉬워할 때 훌훌 털고 떠나야 뒷모습이 아름답다. 어느 조직이든지 누구나 한번 씩 책임자 자리에 앉아 봐야 조직의 생리를 이해하고 협조자가 된다. 리더가 장기간 연임하는 조직에 혁신과 발전은 물 건너간 거나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이든, 대학이든, 사회단체든 모든 조직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사항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주장은 아집과 독선일 뿐이다. 조직의 리더 교체를 ‘물갈이’라고 한다. 참 좋은 순수 우리말이다. 물은 갈아 주지 않고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4대강 사업이 말썽이 된 것도 보 설치로 인해 자연유수의 흐름을 방해해 고인 물이 썩어 부영양소 발생으로 녹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새 물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다. 치열해져 가는 경쟁 시대에 혁신과 개혁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물론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다. 그것은 신관이 잘못 했을 때 나무라는 질책이다. 이는 전관이 잘한 만큼 신관도 분발해 잘하라는 뜻이다. 잘 못 하면 물러나라는 경고로 진퇴가 분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정부출범과 함께 물갈이가 안 된 자리의 구관들은 임기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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