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1:32 (목)
누워서 꽃피는 연필
누워서 꽃피는 연필
  • 김우정
  • 승인 2017.07.04 0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우정 시인
연필 한 다스가 공원 놀이터에서 발견됐다

그들을 찾아주는 미아보호소는 없었다

모래는 햇빛과 바람과 비를 모아주지만

싹을 틔우지는 못한다

밟아주면 더 기성지게 돋아나는 것도 있지만

밟혀서 촉이 부러지거나

태어나서 한 번도 촉을 틔어보지 못한 것이

모래 속에 온도계로 꽂혀있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버티었지만

모래 따먹기에 싫증난 아이들이 돌아가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이들은 찾아주지 않았다

산책을 하다가 데려온 미아를

꽃병에 꽂고 보호소를 차렸다

앉아서 찍어내는 글쓰기에 질려

이불속에 토굴을 파고 누워서 연필이 꽃피는 시간

장시간 누워서 꽃피는 볼펜이나 만년필은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