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2:17 (금)
학생들, 제 발로 찾아온
학생들, 제 발로 찾아온
  • 김금옥
  • 승인 2017.07.05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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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옥 진해냉천중학교 교장
 두 남학생이 교장실로 찾아왔다. 이럴 땐 보통 사고가 생겼거나 나쁜 일을 알리러 오는 경우가 많아 본능적으로 긴장한다. 그런데 독서토론 동아리 활동을 점심시간에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다음 주가 시험 기간이어서 이번 주는 시험공부도 하고 점심식사도 편하게 하도록 동아리 활동을 쉬는 것으로 합의를 했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한 명씩 두 명씩 “그냥 해요!” 하면서 아이들이 교장실을 들락거렸다. 뜻밖의 반응에 내심 놀라워하면서 “그렇다면 시험 마지막 날 다 모여라. 집에 바로 가지 말고 책 좀 실컷 읽고 가자!” 했더니, “예 좋아요” 하는 것이 아닌가. 시험이 끝나는 날에는 무척 지치기도 하거니와 맘 편하게 실컷 놀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어서 농담 삼아 툭 던져 봤는데, 모두들 좋아라하니 독서 동아리를 처음 시작할 때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학교 게시판과 현관에 ‘독서 토론반 모집’ 공고를 내 봤지만 아이들은 바빴다. 일과가 끝나면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하거나 학원 때문에 도무지 시간이 안 된다고 했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고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정서적인 힘을 기르는데 독서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결국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 모인 아이가 겨우 다섯 명이었다. 우선, 아이들 마음에 부담이 없도록 짧은 시 한 편, 이문재 시인의 ‘뻐꾸기는 울어야 한다’를 읽기로 했다.

 초록에 겨워/거품 물까 봐/지쳐 잠들까 봐/때까치며 지빠귀 혹여 알 품지 않을까 봐/뻐꾸기 운다/남의 둥지에 알을 낳은 뻐꾸기가/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울음으로 뉘우치는 일/멀리서 울음소리로 알을 품는 일/뻐꾸기 운다(이하 생략).

 낭송이 끝나고 “무슨 생각이 드니?” 하고 물어봤다. 아이들은 뻐꾸기 탁란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뻐꾸기는 딱새 둥지에도 알을 낳았어. 알에서 막 깨어난 빨간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서 알을 영차영차 밀어내더라… 엄마 새는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아니 엄마가 말려도 소용이 없더라…” 과학 잡지나 TV 다큐에서 본 이야기들을 앞다퉈 했다. “앞산에서 뻐꾸기가 울길래 교장 선생님이 가서 물어봤어. 왜 그리 울고 있냐고.” “짝짓기하려고 그래요” 아이들은 “아하하하하” 신이 났다. 뻐꾸기가 자신의 아기를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하는 운명을 슬퍼하며 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다음 날은 신문칼럼을 읽고 생각 나누기를 했고, 3일째에 글자 수가 많지 않은 책을 주고 읽어오게 했다. 입소문이 나서 11명으로 회원이 늘었다. 짧은 점심시간에 20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어떻게 밥을 먹는지 날이 갈수록 점점 빨리 독서토론장에 모였다. 사실 시험 기간에는 눈앞의 공부에 밀려 밤잠을 설치게 되고 심리적인 압박감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시험 기간 조차 점심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겠다고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찾아들었으니 어찌 기특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필자는 독서 동아리를 통해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포함한 고전까지 맛보게 할 생각이다. 로봇공학이나 유전자 공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학생도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접목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듯하다. 제법 두꺼운 책을 앞에 놓은 아이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이 기특하고 예쁜 아이들이 방학 중에도 책의 끈을 놓지 않도록 연결시켜 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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