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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의 공존
그들과의 공존
  • 이주옥
  • 승인 2017.07.11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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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길 위에서 돌아다니는 속칭 ‘길고양이’가 통상 100만 마리는 된다고 한다. 어느 날 고양이 개체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나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채, 무방비상태로 길 위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다. 고양이 하면 우선은 쥐가 떠오른다. 곡식을 축내는 쥐에게 고양이는 상극이며 앙숙. 특히나 고양이는 정의의 사도처럼 여겨지며 사람에게 유익한 동물로 구분됐다. 한때 쥐잡기에 혈안이 됐을 때도 고양이는 사람의 능력 밖에까지 뻗쳐서 쥐 퇴치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곤 했다. 그래서 쥐는 해로운 동물이며 고양이는 그 해로운 동물을 제거해 주는 유익한 동물로 위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친숙한 개보다도 더 우위에서 대접을 받았고 저 자신도 자부심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반려견이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요즘에 고양이도 반려묘로 너끈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아한 털과 깊은 눈매를 가진 반려묘는 오히려 어리광을 피우거나 애교를 부리는 개보다 더 귀족적인 포스를 뽐내기까지 한다. 또한 고양이와 쥐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부터 애니메이션까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까지 제공했다.

 요즘은 어떤가.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이나 어둑한 담벼락 위에서 웅크린 고양이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이름마저 길고양이라 불리며 제 포스를 잃어가고 있다. 또한 사람 심성 건드리는 오묘한 울음소리는 자못 괴괴하기까지 하니 천하에 없는 천덕꾸러기가 된 현실이다.

 이런 길고양이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면서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속칭 캣맘이라고 불린다. 제 입으로 음식 넣기도 힘든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길거리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에게 베푸는 사랑은 갸륵하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매번 제시간에 일정한 장소로 음식을 가져다 놓고 등이라도 한 번 쓰다듬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마음인가.

 하지만 세상살이엔 호불호가 존재하는 만큼 사랑을 표현하고 내색하는 데도 남의 눈치를 봐야 할 때가 있다. 특히나 길거리에 상주하는 다수의 동물에게 나눠주는 마음은 더욱 그럴 것이다. 길고양이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다분히 피해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돌봄을 받지 못한 동물은 위생적인 면에서 터부시 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렇게나 방치된 조건은 더욱 불온한 조건으로 가는 온상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 무익한 미생물과 전염병 발생이 쉽기에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길고양이들에 대한 거슬림은 증오로 변하고 결국 그 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에게 그 증오심이 옮겨 가기도 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던 것만 봐도 그렇다. 언젠가 캣맘들에게 옥상에서 돌을 던져 사망하게 하거나 상해를 입힌 사건은 애묘인이나 아닌 사람들에게나 공분했던 일이었다.

 나날이 길고양이가 늘어가는 이유는 사람들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반려묘로 키우던 것을 무책임하게 유기하다 보니 그 개체 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늘어난 것이다. 지구상에 인간만 사라지면 모든 것은 제 자리를 잡고 평화로울 것이라고 했다는 어느 환경운동가의 말이 ‘인간’ 당사자인 내가 생각해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개도 그렇지만 유기되는 고양이는 특히 질병에 무방비상태로 버려진다고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길고양이 관리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대책의 일환이 TNR(Trap-Neuter-Return 포획, 중성화, 되돌려 보내기)이다. 일단 무방비로 돌아다니는 것들을 잡아들여서 중성화 수술을 하고 원래 있던 집으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인데 비용 면에서나 실행 면에서나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지구상에 일어나는 불온한 일을 처리하는 일은 결국 사람 몫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동물이 사람의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는 현실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보다 근원적이고 의미 있는 동행의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 어차피 문제는 인간으로부터 기인하는 것, 단순한 호불호로 서로 갈등을 키워갈 것이 아니라 그들과 공존한다는 의식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구의 질서와 평화를 깨는 원인 제공자는 결국 우리 ‘인간’인 사실을 아프게 자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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