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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 잃었지만 행복은 연습하면 늘어요”
“청각 잃었지만 행복은 연습하면 늘어요”
  • 김용구 기자
  • 승인 2017.07.13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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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노인스포츠지도사협 ‘돕는 삶’ 사는 김영 회장 두번의 시련 극복ㆍ재기 “희망ㆍ행복 쭉 전파할 것”
▲ 누군가가 힘들어 할 때 나라도 손을 내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는 김영 회장은 여력이 있는 한 앞으로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파하고 싶다고 했다.
 ◇행복 전도가 곧 나의 행복= “행복은 연습해야 늘어요.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행복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죠.”

 (사)한국노인스포츠지도사협회 김영(56ㆍ여) 회장에게 협회를 만든 이유를 묻자 연습이라도 한듯 조곤조곤 한마디씩 내뱉은 말이다.

 그는 지난 1월 노인스포츠 강사가 되고픈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이 협회를 건립했다.

 그동안 90여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 도움을 받았다. 협회는 각 대학과 연계해 학교를 가고픈 사람들에게도 길을 안내해 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최고 경영지도자, 카네기리더십, 여성리더십, 경남지역 노인정책지도사 과정 등을 교육한다.

 김 회장은 여러 단체의 성공한 사람들과의 교육교류 및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어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연계해주는 한편,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하고 노인들을 위해 ‘찾아가는 행복힐링봉사단’을 만들어 독거노인 등을 돕고 있다.

 그는 무료로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을 하기도 한다. 삶을 놓고 싶은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가 함께 울고 웃으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강의를 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큰 보람이다.

 김 회장은 “행복이란 어떤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닌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술 취한 남편의 폭력… 칠흑 속에서 희망을=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순리란 것이 있는데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였어요. 아침에 눈을 떠도 주변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었죠.”

 김 회장이 힘겹게 살아온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24살에 지인의 소개로 선을 보고 단 두 번의 만남을 가진 뒤 결혼을 했다.

 하지만 당시 남편이 술에 취하기만 하면 이어지는 폭행 때문에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정도의 지옥이었다”며 “모든 일에는 ‘인과응보’가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살면서 남에게 크게 해를 가한 적도 없고 착하게 살아왔던 터라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더 이상 아이들이 폭행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그는 세 아이와 47만 원이 든 통장을 가지고 이혼을 선택했다.

 이후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믿었던 그에게 찾아온 것은 행복이 아닌 양육으로 인한 생활고였다. 하지만 그는 세 아이를 보며 다시 마음을 잡았다. 그는 “보험교육사, 피부관리사, 학원 강사 등 무슨 일이든지 간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며 “그러다보니 정부가 지원하는 지역자활센터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됐다”고 말했다.

▲ 김영 회장
 김 회장은 어느 복지가의 도움으로 조그마한 학원을 운영하게 됐다. 오전 5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았다. 이후 정부 자활사업에도 참여하며 행복을 만들어갔다.

 그런 그에게 꿈이 생겼다. 그는 평소에도 여러 직업 가운데 노사화합 기업친절 교육보조강사 일을 하며 가장 많은 보람을 느꼈다.

 강사들이 강의를 잘 할 수 있도록 준비를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끝날 때까지 강단 뒤에서 기다려야 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수많은 강사들의 강의를 들으며 “나에게도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는 “혼자 강의를 연습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수입은 적었지만 일을 마치고 오면 우리 세 아이들이 반겨주는 모습에 행복했다”고 말한다.

 ◇준비 끝에 찾아온 기회가 행복으로= 그러던 어느 날 강사 개인사정으로 강의를 할 수 없게 돼 회사로부터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기회란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고 했던가.

 김 회장은 60분인 강의시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했다. 학문적인 부분은 따로 공부하며 강의를 준비했다. 그렇게 그는 강사로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지난 2000년에는 대체요법이란 새로운 학문을 배워 현재 대학에서 건강대체요법 외래강사로, 또 다문화가정 평생직업 교육자로써 활동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8년도에는 우연히 웃음치료사라는 학문을 배우면서 그 동안 그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긴장감만을 주지 않았는지 뒤돌아 봤다.

 세 아이도 어느덧 성인이 됐다. 어머니를 본받고 큰 탓일까. 큰딸은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어린이집 교사가 됐다. 둘째 딸은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활동 중이다. 막내는 남자간호사가 되겠다며 간호학과를 선택했다.

 그는 “자식 앞에 부끄럽지 않는 부모만 있다면 세상은 그래도 살아 갈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아도 당당한 삶이 행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한다.

 ◇청각을 잃다… 두 번째 시련과 재기= 행복을 나누려던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지난 2015년께 외부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양산 고속도로에서 크게 사고가 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한쪽 청각을 잃었다. 김 회장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아직 못 다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며 “사고가 컸지만 청각을 잃은 것에 그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 회장의 긍정적인 사고는 곧 주변으로도 전파됐다. 그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강의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또 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된 것이다.

 그는 실패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일은 누가 알아주지는 않아도 많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그 자체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그에게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다만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다.

 김 회장은 “한 사람의 진가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내가 가장 힘든 시간에 내 옆을 지켜준 사람이 내가 함께 해야 할 사람이다. 누군가가 힘들어 할 때 나라도 손을 내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여력이 있는 한 앞으로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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