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0:32 (금)
근본부터 챙겨야 할 먹을거리
근본부터 챙겨야 할 먹을거리
  • 김혜란
  • 승인 2017.07.19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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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TBN ㆍ창원교통방송 진행자
   하루 세끼 밥 먹듯이 요리프로그램을 만난다. 어떤 프로그램은 특별한 나라로 여행 가고 싶게 만든다. 또 어떤 프로그램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맛있어하는 음식을 따라서 먹고 싶게 한다. 직접 요리를 할 용기를 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몸의 특정 부위에 좋은 음식, 질병을 낫게 하는 요리법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모여서 수준 높은 정보와 지식을 논의하며 자연스럽게 특정 음식을 먹음으로써 역시 그 음식을 찾게 하기도 한다. 심지어 라디오로도 음식에 관한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청각만으로 시각과 촉각, 후각까지 자극하며 음식을 먹고 싶게 유도한다. 물론, 특정 맛집이 교묘하게 홍보된다. 어떨 때는 지글거리고 화려하며 섹시(?)하게 데코레이션된 요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음식이 부와 지위, 혹은 계급과 같은 선상임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게도 만든다. 이쯤 되면 음식이 채워주는 정신적 허기와 성적 욕망의 허허로움 역시 무시할 수 없어진다.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옥자’는 여러 가지 생각 거리를 담고 있다. 영화배급과 상영 시스템상 떠오른 것은 새롭게 대두되는 주문형 인터넷 스트리밍 제공자, 넷플릭스다. 극장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받은 비디오 파일로도 동시에 볼 수 있는 영화 ‘옥자’는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에서는 거의 상영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금도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돼지의 유전자 변이로 태어난 ‘옥자’를 보며 하마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온순하고 두뇌가 뛰어난 동시에 덩치에 비해 많이 먹지도 않고 배설물조차 귀여운 슈퍼 돼지 ‘옥자’는 결국 각종 부위마다 최상급의 맛을 자랑하며 죽임을 당하고 식재료로 변해갔다. 경악스러웠다. ‘옥자’가 탈출할 때 그들이 낳은 2세도 함께 데리고 가 달라던 수많은 ‘옥자’들의 눈빛과 울음장면에서 엄청난 고통이 전해져왔고 소름이 돋았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있는가.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식탁에 오르는 맛있는 닭요리와 돼지고기, 소고기들은 어떤 ‘옥자’의 울음과 공포로 뭉쳐진 음식일까. 조류독감과 구제역은 우리가 만든 또 다른 ‘옥자’들의 지옥이 아닐까.

 최근 전희식이라는 농부는 겨울철에 푸른 채소로 쌈을 싸서 먹는 삼겹살은 독이라고 말한다. 겨울철 상추는 짙푸른 빛깔과 윤기를 위해 질소 비료를 액상으로 마구 줘서 키운 비닐하우스 출신인데, 질소 비료는 인체에 들어가서 몇 단계를 거치면서 산소운반능력을 없애버려 산소결핍증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겨울철 새파란 채소는 발암물질을 만든다는 결론까지 내린다. 삼겹살 또한 돼지를 가둬놓고 사료를 먹이는 밀집 축산의 결과이고, 옛날 자연 상태의 가축들은 껍질과 살뿐, 비계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겨울에 딸기 역시, 난방을 위해 석유를 엄청나게 쓴 석유 먹는 과일이니, 겨울철에 우리는 계절을 거스르는 잎 푸른 채소나 고기가 아니라 저장 음식에 시래기, 된장과 김치를 먹어야 안전하다고 말한다.

 1년에 2모작, 많으면 3모작 정도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서울 근교처럼 땅값 비싼 곳에서는 1년에 27모작까지 하니, 보름에 한 번씩 수확하는데, 땅은 버텨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어쩔 수 없이 비료를 물처럼 흠씬 줘야 하고, 결국 속성재배가 독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다양한 요리프로그램이 방송되지만, 그 요리의 재료들이 어떻게 재배되고 키워지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없다. 언젠가 그런 것을 다루기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제작하던 피디가 업체에서 뇌물을 받고 홍보한 사실이 드러난 이후, 비슷한 프로그램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요리프로그램이 좋다. 하지만 그와 함께 우리가 먹는 식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문제는 없는지도 알 권리가 있다. 사방이 막혀있어서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 갇혀 그저 요리재료로만 키워지는 생명체의 한과 눈물, 고통을 먹고 사는 인간들이 정상인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일 년에 두세 번 생산하면 족한 채소를 보름에 한 번씩 토해내야 하는 땅의 통곡과 고통을 무시해서는 인류가 생각보다 더 빨리 멸망할지도 모르겠다. 물과 땅에서 태어난 같은 생명체 아닌가. 먹고 먹히는 생태계를 무시한다면 굶어 죽을 테지만, 적어도 생명체에 대한 예의는 지키며 먹고 먹혀야 할 것 같다. 그 예의가 인간 자신에 대한 예의라는 사실 역시 깨달아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의 애써 무시하는 원인들을 정조준해야 할 때가 왔다. 철을 무시하고 나오는 채소 역시도 이제는 금연하듯 끊을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먹는 음식, 근본부터 챙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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