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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이무첨 부이무교의 성찰
빈이무첨 부이무교의 성찰
  • 이광수
  • 승인 2017.07.27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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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며칠 전 신문을 보니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의 기린아로 불렸던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가 떴다. 1천억대의 자산가였던 그 사람의 최후는 쓸쓸했다. 10평의 원룸에서 스스로 이 세상과 하직했다. 한 때 ‘커피 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분이 이혼까지 하고 자신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공자의 논어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빈이무첨 부이무교(貧而無諂 富而無驕)’가 떠올랐다. ‘빈곤하게 살지만 비굴하게 알랑거리며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지만 거만하거나 우쭐대며 교만하게 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분이 논어를 읽었는지 모르지만 사업에 대한 자기 과신을 잠시 멈추고 인생의 궁극적인 존재가치를 생각하는 여유를 가졌다면 이런 비극을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잘 될 때가 있고 못 될 때가 있다. 자신의 운이 성할 때는 무슨 일이든지 벌리면 성사가 된다. 흥운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운이 가고 쇠운이 닥치면 만사 불성이다. 이때는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망해봐야 깨닫는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뼈아픈 경험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주역(周易)은 항상 이 점을 경계한다. ‘양(길운) 속에 음(흉운)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다’고 했다. 인생사새옹지마요 흥망성쇠는 피할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지난 역사를 상고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만약 이 분이 단돈 1천500만 원으로 커피 프랜차이즈를 시작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마음을 돌려먹었다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나가다가 망하면 어떤가. 가난이 불편하긴 해도 비굴한 것은 아니며 부자가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다. 너무 일찍 이룬 물질적 사회적 성공은 반드시 중도에 실패가 따른다.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힘은 자신에 대한 냉철한 자기성찰이 뒤따를 때 생긴다. 또 한 사람 피자 업계의 강자인 모 회장이 회삿돈 91억 7천만 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대리점에 대한 갑질 논란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대가이다. 그리고 재계 15위의 모 아파트 재벌 회장이 불투명한 경영구조와 임대료 갑질 논란으로 정부의 제재를 받고 곤경에 처해있다. 최근 재벌 2~3세들의 파렴치한 갑질 행태로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 모두가 ‘빈이무첨 부이무교’를 망각한 자기관리 실패가 빚은 결과이다.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벗어난 행동을 하면 반드시 화가 따른다.

 ‘부이무교(富而無驕)’의 권력에 관한 해석은 ‘지위가 높으면 저절로 교만해지고 녹봉이 많으면 저절로 사치스러워지는데 사람이 그렇다’로 이는 인조임금과 신하가 주고받은 문답이다. 금권정치라는 말이 있다. 일본 정계에서 나온 말이다. 파벌이 심한 일본정치에서 돈과 정치가 결탁한 부패상이 폭로돼 결국 그 정권은 무너졌다. 그런데 지금 아베노믹스로 20년 장기불황을 극복해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아베 정부가 ‘사학 스캔들’에 휘말려 곤경에 처해있다. 전후 일본의 재편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우리나라와 불편한 관계도 감수하면서 장기집권을 꿈꾸던 아베 총리는 26%라는 최악의 지지율로 낙마 위기에 처해 있다. 혁명의 나라 프랑스를 ‘마크롱 돌풍’으로 들뜨게 했던 그도 개혁과정에서 권위주의적 행태가 부메랑이 돼 지지율이 50%대로 하락했다. 두 정치인 역시 권력의 힘을 내세워 오만하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다는 ‘부이무교’를 망각해 자초한 결과이다.

 이제 새 정부의 내각 구성이 완료되고 본격적인 정책추진에 시동이 걸렸다. 난항을 거듭하던 11조 원의 추경이 국회에서 통과돼 실업 대책 등 당면한 민생현안 해결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인기에 영합한 현실과 괴리된 섣부른 정책 결정은 정치 불신이라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가 있다. 전쟁에 승리한 개선장군 마냥 내로남불식 독단적 국정 운영은 결국 민심이반이라는 초라한 결과로 귀결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자 조석변이기 때문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했듯이 정책 결정과 집행은 앞뒤를 재어보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던 시대는 이미 조종을 고했다. 공자의 ‘빈이무첨 부이무교’를 냉철하게 곱씹어 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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