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1:23 (금)
아날로그의 부활
아날로그의 부활
  • 이광수
  • 승인 2017.08.02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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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신문에 투고할 원고의 초고를 원고지에 적고 있다. 컴퓨터 워드작업으로 A4 1장 분량은 200자 원고지 6장으로 써야 한다. 대개 신문투고의 경우 A4 1장 분량의 글을 선호한다. 그러나 비판적 담론을 담은 논평을 쓰려면 A4 용지 1장 반의 분량이 돼야 한다. 200자 원고지로 10매 정도의 분량이다. 내가 원고지 글쓰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연령적으로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쓰기의 즐거움은 꾹꾹 눌러서 쓰는 펜 놀림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원고지에 초고를 쓰고 수정 작업인 퇴고하기가 좋다. 적절하지 못한 표현은 죽죽 줄을 그어서 고쳐 쓰고 첨삭할 내용은 V 표를 해서 적절한 여백에 쓴 내용을 옮겨 첨삭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물론 컴퓨터의 워드작업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불편함 때문임을 솔직히 고백한다. 최근 디지털의 반작용으로 아날로그의 부활 조짐이 예사롭지가 않다. 기업의 경영에서도 스피드와 효율성을 강조하던 주장들이 사람의 감성에 호소하는 소프트한 감성경영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재계의 CEO들이 사원들에게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품질도 품질이지만 소비자의 감성을 제품에 반영해 소비 욕구를 자극해야 대체소비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부활의 첫 신호탄은 LP 레코드판의 리바이벌이다. CD, DVD, MP3로 진화한 음원이 LP와 테이프레코드의 역공을 받고 있다. LP의 재발견이 가장 극적으로 이뤄진 곳은 미국이다. 미국 내슈빌에 있는 URP(United Record Pressing)는 미국에서 제일 크고 전 세계에서 3번째로 큰 LP 레코드판 제조회사이다. 이 공장에서는 하루 4만 장을 제작해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 유럽 LP 업계의 주장에 의하면 2015년 한 해에 전 세계적으로 새로 생산된 LP 판이 3천만 장에 이를 거라고 추산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40개가 넘는 LP 레코드 제조공장이 풀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물간 것으로 치부됐던 구닥다리 LP가 왜 갑자기 부활했을까. 사람들은 레코드판을 보면 손으로 넘겨가며 살펴보고 싶어 한다. 손맛을 즐기려는 것이다. 차가운 쇠 맛이 나는 CD보다 하나 사서 손에 들면 뿌듯한 느낌을 갖는 소유의 자부심이 생긴다. 우선 LP의 자켓에서 풍기는 화려한 디자인과 가사표시, 배경 사진, 가수의 표정 사진 등에서 고급스러운 가치와 따뜻한 사람 냄새를 느낀다. 마치 특정 선호 품 수집가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LP 판을 한 장 한 장 사모아 책상 앞에 진열해 놓고 뿌듯해한다. 턴테이블을 열고 조심스럽게 레코드판을 올리면 조금 인터벌을 두고 약간은 직직거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정겹다. 날카롭고 선예한 CD 음의 차가움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운드가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가수들도 LP로 자신의 신곡이나 기 CD로 발표한 곡을 리레코딩하고 있다. 이에 덩달아 테이프레코드도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지금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판매하고 있지만 가수들이 본격적으로 테이프레코드에 자신의 곡을 취입하고 있으며 테이프 레코드공장도 양산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을 두고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고 폄하할지 모르지만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감성을 드라이하게 만든 케미칼리즘에 염증을 느낀 반동인지도 모른다. 디지털의 한계는 진짜가 아니라 가짜로 조작한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또 다른 아날로그의 부활은 사진이다. 스마트폰의 진화로 디지털카메라도 그 효용성과 기능상의 편리성이 사라질 운명에 놓여있다. 이미 1천800만 화소급의 스마트폰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무거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여행할 필요가 없어졌다. 수준급 동영상 촬영까지 가능하고 다양한 포토샵 기능까지 탑재된 스마트폰의 등장은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제 풀 바디가 아닌 크롭 바디 디지털카메라가 설 입지는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풀 바디 카메라만 남아 작품사진을 찍는 도구로 밀려날 것이다. 마치 아날로그 카메라가 디지털의 자리를 양보한 것처럼. 디지털카메라는 요즘 미러까지 제거해 사진 찍는 맛이 나지 않는다. 예전 니콘 F3 카메라에서 느꼈던 철컥철컥했던 셔터 음의 정겨움인 사진 찍는 멋과 재미가 사라졌다. 이에 사진업계에서는 재빠르게 필름의 재생산을 서두르고 있다. 필름업계의 양대 산맥인 코닥과 후지는 기존의 소량 생산체계를 다시 확장해 재생산할 계획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이에 중고 아날로그 카메라 가격도 급등했다. 필름을 생산하면 아날로그 카메라는 자동적으로 생산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아날로그의 부활은 다가오는 포스트 디지털 경제시대의 모델이며 그 모델은 기술의 미래를 바라보되 테크놀로지의 과거를 잊지 않는다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빠르고 편리함만 추구하는 시대에서 느림의 미학을 즐기려는 신 아날로그 시대의 도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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