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2:06 (금)
협치와 적폐청산 공존할 수 없어
협치와 적폐청산 공존할 수 없어
  • 이태균
  • 승인 2017.08.10 2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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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균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와 대통령 후보 시절 이명박ㆍ박근혜 대통령 집권 기간 9년을 총체적 실패의 시대로 규정했지만, 문 대통령에게 표를 주지 않은 50% 이상의 보수 성향 국민은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 집권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본다. 적폐에 대한 생각도 문 대통령 지지자들과 내용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역대 모든 정부도 잘잘못이 있거니와, 모든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국정 운영을 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전체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책임지는 자리다. 대선 때 후보들이 강조한 적폐 청산은 대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무기였지만, 당선된 후 국정을 이끄는 도구로 사용하기에는 무리다. 어차피 여소야대 상황에서 적폐청산이란 용어가 정치 무대에 다시 오르는 순간 대통합 정치와 협치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만약 문 대통령이 전 정부에 대한 청산의 정치로 일방통행할 경우 되돌아 나올 길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임으로 그 길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진정한 협치를 통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것인지 아니면 국론분열과 여야의 극한 대립을 감수하더라도 청산의 외길을 가야 할 것인지를 결단해야 할 시점이다.

 새 대통령의 직무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다. 청와대 뜰을 거닐면서 대통령과 참모들이 커피잔을 들고 미소 띤 모습이나 비서실장이 소탈하게 웃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 국민의 실상과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왜 웃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지는 아리송하지만,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초긴장 상태의 안보환경, 청년실업과 국민들의 민생고를 고려하면 과연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이 웃어야 할 시점인지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대통령제 폐해 중에서 대통령에게 견제되지 않은 제왕적 권한을 부여한 것은 되레 대통령을 지켜주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권력 남용의 유혹으로부터 대통령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는 오로지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와 반대자를 떠나 차별 없이 베푸는 덕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문고리 권력과 친박에 둘러싸여 그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파멸의 길을 자초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개헌을 약속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내년도에 펼쳐질 정치일정이 너무 빠듯하다. 내년 6ㆍ4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부는 북한 핵과 미사일 발사문제로 한미는 물론 한중간 긴장의 틀 속에 갇혀있다. 유엔의 강력한 북한 제재 조치가 만장일치로 안보리에서 통과됐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손들고 대화의 장으로 나올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어쩌면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시점에 문 대통령은 남북문제를 풀어갈 해결책 선택이 좁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국회선진화법을 십분 활용한 민주당의 국회 전략이 주효했으나 이제는 국회 선진화법이 되레 민주당과 청와대의 국정 운영에 대한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헌법은 국무위원과 정부 요직 인사에선 대통령에게 제왕적 권한을 부여했지만 국회와의 관계에서 대통령이 사용할 무기가 없다. 선진화법이 버티고 있는 국회를 움직이려면 전체 의석의 5분의 3 이상인 최소 180석을 확보해야 한다. 반면 현재 민주당 의석은 120석이다. 문 대통령에게 협치는 국정 운영의 필수 전제 요건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야당 당사를 방문하는 보여주기식의 이벤트로는 협치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기에 책임을 나누려면 권력도 함께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 협치 대상자인 야당에게 설 자리까지는 마련해 주지 못할망정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은 절실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반도의 안보 현실은 비상(非常)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최선책은 아닐지 몰라도 차선책으로 대화보다는 대결을 우선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정권의 첫 시험대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협치를 통한 정권의 안정 기반 확보가 그래서 더 절실하다. 남북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될 여건이 안되면 우리 내부 부터라도 화해와 탕평책을 통한 내실 다지기를 우선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인기는 이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야당과의 협치도 잘 되지 않고 성주의 사드 4기 긴급 배치문제로 주민과의 대립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취임 초기에 국민들과의 스킨십 강화를 통해 얻은 인기는 청년실업과 민생에 대한 국정 운영을 야당과의 협치 없이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은 협치와 적폐청산은 공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국정 동력을 얻기 위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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