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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과 아파트
닭장과 아파트
  • 김혜란
  • 승인 2017.08.16 2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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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TBN ㆍ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조류독감에 이어 살충제 검출 달걀로 국민들의 영양균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얼마나 많은 음식에 달걀이 들어가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훨씬 큰 공포가 엄습한다. 닭이 재료인 음식은 그동안 여러 번 겪은 탓에 ‘맷집’이 생겼지만, 달걀 자체만으로 섭취에 대한 공포감이 이렇게 밀려온 적은 없었다. 서민 밥상에서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단백질을 공급하는 가장 값싸고 가격대비 질 좋은 음식이 달걀이다. 조류독감으로 인해 난생처음 달걀을 외국에서 수입해 먹는 상황까지 초래됐고, 그 상황에 대한 적응도 채 못했는데, 이번 살충제 검출 달걀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내에서 하루에 유통되는 달걀은 4천300만 개가량 된다고 한다. 문제의 살충제가 검출된 농장이 늘고 있고 달걀 자체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는데, 달걀을 판매하는 유통업체와 달걀을 사용하는 업체들은 판매를 중단하거나 이미 사놓은 달걀에 대해서도 사용을 망설이고 있다. 식품안전당국의 검사결과 살충제가 검출되지 않은 농장의 달걀을 빠르게 판매하는 곳도 있다지만, 기준치 이하 살충제 달걀까지 모두 폐기하라고 해서 혼란은 커지고 있다. 닭고기 식용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다.

 바퀴벌레나 진드기, 벼룩 등의 중추 신경계를 파괴하고 살상하는 살충제를 뿌린 달걀이 유럽 16개 나라와 아시아의 홍콩에도 유통됐다. 국내에서는 닭에 대한 그 살충제사용이 금지돼 안전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결국 사달이 났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암암리에 이 살충제가 이미 이전부터도 사용됐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덥고 습한 여름에 더 기승부리는 닭 진드기를 잡기 위해 금지된 살충제를 닭에 뿌리고 사료에 섞어 먹이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닭의 피부와 입으로 흡수된 살충제 성분이 달걀을 통해 배출됐을 거라는 가능성이다. 지난 1991년부터 달걀의 생산단계에서 항생제나 잔류물질을 검사해왔다고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달걀에 대한 잔류 농약 검사는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고, 이번 살충제의 달걀 함유검사도 지난해부터 표본추출로만 시작됐다고 한다.

 진드기를 닭 스스로 이겨낼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당연히 닭 스스로 진드기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도 달걀을 낳을 닭에게 인체에 해로운 살충제를 뿌린 것은 사육비용을 줄이기 위해 좁은 공간에서 많은 닭을 키웠기 때문이다. 닭들이 스스로 이겨낼 기회를 주지 못한 것이다. 닭이 양계농장에서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A4용지 한 장 넓이인 곳이 많다고 한다. 움직일 틈 없이 빽빽한 공간에서 닭들을 키우다 보니, 야생상태에서 닭이 땅에 몸을 문지르는 ‘흙 목욕’이나 발로 모래를 뿌리는 등의 동작으로 몸에 붙은 진드기나 다른 해충을 없앨 환경이 아예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진드기가 늘어나고, 달걀을 많이 낳지 못하거나 닭의 폐사율이 높아졌는데, 그 일을 방지하기 위해 살충제를 뿌려서 해충을 없애왔던 현실이 지금의 결과까지 초래했다. 또한 살충제를 자꾸 뿌리니 진드기가 면역성이 생겼고, 더 독성이 큰 살충제를 뿌릴 수밖에 없어서 악순환이 계속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닭 진드기가 7월과 8월에 극성을 부리는 것을 알면서 검사는 3월에 했고 일 터지고 나서야 전수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알면서 화를 키운 당국의 책임은 면치 못할 것이다.

 비약일 수 있지만, 아파트를 닭장이라고 표현하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에 살던 부부가 난생처음 휴일에 아이를 놀이터에 데리고 갔는데, 그곳의 모래를 밟은 아이가 소스라치게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익숙한 아이가 발이 쑥 들어가는 모래밭이 무서웠던 것이리라.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특히 아파트의 구조는 다닥다닥 붙어살지만 서로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구조다. 특히 계단형 아파트가 그렇다. 십 년 넘게 같은 공간 위아래로 살지만 서로서로를 알지 못한다. 현관문 닫으면 무인도에 사는 것과 같다. 공동체의 삶을 살지 못하는 아파트 속 인간들은 위험이 닥치거나 영화에서처럼 악성 바이러스가 퍼졌을 때 살아남을 힘이 얼마나 있을까. 힘을 합쳐 충분히 해낼 일들도 그저 자신만 살려고 몸부림치다가 죽음을 맞진 않을까. 아파트 속 인간들의 정서 건강과 영혼의 안전성은 구조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진작에 병들었는지도 모른다. 아파트구조 속 자녀들의 교육환경, 아니, 그들 영혼의 건강상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보장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인간이 사는 아파트와 달걀과 고기를 생산하는 닭 농장은 무엇이 얼마나 더 다른가. 비단 닭과 달걀 섭취의 문제뿐만 아니라, 생명을 대하는 총체적인 반성과 변화가 없이 인류가 버틸 시한이 얼마나 남았을까. 재앙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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