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5:01 (토)
스펙 공화국
스펙 공화국
  • 이주옥
  • 승인 2017.08.22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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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사람들은 태어나서 어느 시기가 되면 부모들의 손길을 벗어나 교육의 장으로 들어선다. 교육은 인간성장 과정에 필수요소다. 배변부터 시작해서 수저를 이용해 밥 먹는 것, 인사하는 법까지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것부터 학습하고 교육받는다. 세상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1차적 요소다.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은 조부모나 부모가 기본이며 성장해서는 위인이나 학교 선생님, 선배, 그 밖의 주위 사람이다.

 교육 시기가 빠른 요즘, 두세 살이 되면 벌써 물리적인 교육이 시작된다. 물론 맞벌이 부부가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대책일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부모들의 과잉욕심도 큰 몫을 한다. 엄마 품을 익히기도 전에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품 안에서 우유를 먹고 다른 사람의 손길로 잠이 든다. 냄새와 눈길로 익히는 엄마보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통해 어머니를 익힌다. 엄마가 눈앞에서 손 발짓으로 헤아려주는 숫자가 아닌, 커다란 종이판에 쓰인 그림을 보며 1, 2, 3, 4를 알게 된다. 어미젖을 먹다가 스르르 잠이 드는 자연 생체리듬보다 유아원 선생님이 정해 준 시간에 잠드는 수면 사이클에 길들여진다. 설상가상 유치원에 가자마자 무자비한 학습에 시달린다.

 우리 세대는 교육과 학습은 학교와 선생님께 전적으로 의지했다. 학습서도 교과서면 충분했고 어쩌다 참고서 한두 권 더 볼 수 있으면 그 중 다행이었다. 부족한 내용은 전과 한 권에 수련장 한두 권이면 넘치고도 남았다. 그것만으로도 열심히 공부했고 그 학습 내용을 바탕으로 상급학교 진학도 무리 없었고 내로라하는 직장도 얻을 수 있었다. 과외라고 해봐야 피아노, 주산, 태권도가 전부였다. 그것도 가정 형편이 좋은 집안 아이들 몇몇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어떻게 된 게 교육의무 연령에 맞춘 공교육에서 지적 욕구나 필요한 스펙을 채우기엔 이미 늦은 현실이 됐다.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 수학, 미술, 한자, 심지어는 수영, 줄넘기까지 해야 한다. 거기에 느닷없는 ‘아이돌 과외’가 유행이라고 한다. 노래나 춤을 잘 춰야 친구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한 컴퓨터 교육은 필수 종목이다. 정보기술자격(ITQ) 엑셀, ITQ 파워포인트 등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녀야 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학원을 쫓아다니며 학습에 시달리느라 심신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간혹 상상할 수 없는 불행한 상황까지 치닫는 경우를 종종 듣고 본다.

 이런 학원순례의 결과물은 자격증이라는 종이 한 장으로 인정받고 보상된다. 겨우 열 살 안팎의 아이가 오로지 자격증 획득을 위해 영어, 한자, 컴퓨터 학원에 다닌다. 거기에 새로이 한국사 자격증까지 합세했다. 학부모 10명 중 8명은 이런 사교육비를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이유는 나중에 대학 갈 때 도움이 되거나 주변에서 시키니까 조바심에 하게 된다고 한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공교육 붕괴의 병폐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은 숫자에 그리고 스펙에 미친 나라라고 감히 표현할 수 있겠다.

 교육 전문가들은 초등학생의 자격증 취득이 교육적으로 유익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초등학생 때부터 시험 중심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게 문제다. 무엇보다 자격증은 합격이 우선이기에 학생들이 내용보다는 높은 점수를 얻는 데만 집중해 공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공부 자체에 흥미를 느껴서 계속 공부하게 되는 ‘내재적 동기’가 훼손돼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이 꺾이게 된다는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해서도 아이는 꼭 부모 욕심만큼 자라지는 않으며 자격증 몇 개 더한다 해서 그 아이가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의 성향대로, 능력대로 바라보고 응원하면 그만큼의 행복과 성과는 반드시 보장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펙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사회구조가 변해야 함도 있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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