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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의 지름길
적폐청산의 지름길
  • 김혜란
  • 승인 2017.08.30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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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TBN ㆍ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이 지났다.

 이 기간 곳곳에서 적폐청산이 현재진행형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회장들의 ‘갑질’에 대한 응징을 시작으로,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의 공관병들에게 행한 어처구니없는 특권과 비인권적인 행태 공개는 국민들을 경악시키고 비슷한 적폐 대상들을 긴장하게 했다. 물론, 이순진 전 합참의장 같은 진정한 지휘관의 모범사례 공개는 떨어지려는 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과 함께 여기저기서 관행처럼 여겨지던 ‘적폐’를 없애려는 노력(?)이 시도되는 것은 많은 국민들이 바라던 일이다.

 어떤 조직이든 적폐의 시작인 관행이 존재한다. 마치 매뉴얼처럼 숙지 돼 움직이는 조직도 있다. 실제로 조직의 리더들은 많은 경우, 조직원들에게 매뉴얼대로 하기를 요구한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라고 말은 하지만 조직의 매뉴얼과 다를 때는 당장 제동을 건다. 조직의 상부에서는 한 발 더 나가서 적폐청산이라며 새로운 매뉴얼을 만들어 일방적으로 명령(?)을 하달하는 일도 많다.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하는 일이 과연 적폐청산이 맞는지, 적폐청산의 원래 의미를 놓친 일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내용이 아니라 해도 형식이 적폐라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말이 적폐청산이지 공공기관의 직원들, 나아가 기업체 직원들조차 귀찮아할 수도 있다.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고 하면 뭔가 짜증 나고 무겁고 힘든 느낌부터 들 수 있다. 늘 같은 방식을 되풀이해 왔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이 자신에게 절실하지 않거나 아무런 이득도 없다면 더 그럴 수 있다. 그저 정부가 바뀐 기념비적인 시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다. 새 리더는 잠시 있다 가지만 자신들은 더 오래 그곳에 있을 진정한(?) 주인이라고 여길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조직원들은 적폐와 오래도록 동고동락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 하나, 과연 제대로 된 적폐청산은 조직 전체가 움직여서 가능한 일일까. 명령과 하달로 가능한 조직 전체를 향한 적폐청산 매뉴얼은 그 결과가 미미하거나, 마지못해 한 것일 수도 있고, 그런 경우는 분위기가 바뀌면 곧 원위치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과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적폐청산의 내용이 조직원 개인이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자신이 적폐 대상이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면 좋아할 리 없고 제대로 할 리도 없다. 단체로 묻어가는 적폐청산은 또 시간과 노력만 허비할 뿐, 헛된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적폐청산 자체를 개인이 좋아할 수 있게 만들까. 리더는 이것을 고민해야 한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도 공감하고 좋아질 수 있도록 만드는 세밀한 과정의 밑그림으로 필요하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데올로기는 먹히지 않는 젊은 조직원들에게는 적폐청산을 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경제적 이익이나 생각보다 빨리 개선될 사회적인 존재감과 명예의 고양을 세세하고 합리적으로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조직의 힘이 거대하다 해도, 또 그 조직을 통째로 바꾸고 싶어도, 결국은 개인이 할 수밖에 없다. 적폐청산이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설계 외에 조직원, 특히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개인들이 이 일을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좋아하면 자신의 욕망으로 자기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면 자발적으로도 할 수 있게 된다. 아이러니하지만 정치적일 수 있는 ‘적폐청산’ 작업을 이데올로기나 신념에 따라서가 아니라 개인, 그러니까 자신이 주체로 좋아서 하는 일이 돼 버린다. 자신이 하는 일이니 일을 하는 주체인 자신을 존중하고 그 과정이나 결과 또한 존중하게 될 것이다. 존중하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함부로 포기하거나 새로운 적폐를 쌓는 일에 발 담그지 않을 것이다.

 대체 적폐청산이 개인이 좋아하는 일로 만드는 비법은 무엇일까. 조직이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야 할 고민일 것이다. 최근 선호하는 직장이 된 공무원 조직은 평생 보장직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공무원 조직을 존경까지 받는 조직으로 만들자고 한다면 공무원 개인이, 적폐청산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개인은 소중하다. 조직이나 단체에서 개인을 지워버린 일이 지금까지 적폐청산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 왔던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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