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3:35 (금)
교육계에 나타난 음산한 전조를 보면서
교육계에 나타난 음산한 전조를 보면서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17.08.31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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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전조가 있기 마련, 공교육이 위기다.
여러 전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제국이 멸망하기에 앞서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듯
▲ 류한열 편집국장
 진주에 사는 40대 주부 김영선 씨(가명)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의 스마트폰을 몰래 열었다. 휴대폰 비밀번호를 슬쩍 봐뒀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다. 행여 아들이 눈치챌까 봐 조심스러웠다. 여느 때와 달리 손끝이 사르르 떨렸다. 김 씨는 아이에게 온 문자와 카톡 내용을 주르르 훑어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친구와 나눈 잡담거리 외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한 친구의 욕지거리가 섞인 거친 내용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진주에서 여교사가 6학년 남자아이와 성관계를 한 희대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학부모들은 여자 선생님도 못 믿겠다고 혀를 찬다. 학기 초만 해도 아이의 담임이 여자 선생이라 좋아했는데 요즘 예쁜 여자 선생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혹시’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예전 학부모들은 간혹 중학생 딸에게 남자 선생님을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가는 소리로 했지만, 이제는 초ㆍ중생 아이들에게 여자 선생님을 조심하라고 해야 할 처지다.

 공교육은 선생과 학생 간 좋은 관계에서 출발한다. 서로 불신의 벽이 있으면 온전한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단순히 배움에만 그치는 수업이전부라면 공교육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이번 여교사의 일탈은 교육의 큰 틀을 깨는 엄청난 사건이다. 여자 선생이 초등생 제자를 성관계 대상으로 삼았다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희귀성에 온갖 상상력이 붙어 우리의 머리를 하얗게 만든다. 생각하면 할수록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에 빠진다. 어쩌면 이 사건이 우리 공교육의 위기를 제대로 대변하는지 모른다.

 인류가 시작된 후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교육’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종을 누르고 지구의 주인공인 된 이유는 도구를 다루는 지식과 공동체를 아우르는 생각의 큰 틀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과 사고는 집단 교육에서 나왔다. 교육의 위대한 힘을 깨달은 민족은 교육 기관을 만들어 다음 세대를 기르는 교육에 매진했다. 특히 공교육을 제대로 활용한 민족은 인류사를 리더하는 대표 민족이 됐다. 이스라엘의 가정과 학교 교육은 유명하다. 민족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수난을 겪으면서도 민족 정체성을 묶는 교육이 살아 있어서 부활했다. 교육의 위대성을 증명했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한마디로 헌신짝 같다. 공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입시제도가 해마다 바뀌어 어디에 초점을 두고 공부를 해야 할지 갈팡질팡한다. 전인교육을 내세우지만 수능이 힘을 쓰면 오직 점수 내기에 혈안이 된다. 가장 반듯해야 할 교육제도를 뒤집어 보면 고득점 내기로 연결된다. 아직까지 이 문제를 못 풀어 또 수능의 골격이 바뀐다. 좋은 방향으로 튼다며 절대평가를 늘리는 방안을 세웠지만 학생들이 헷갈린다고 반대하고 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할 때까지, 여러 난관이 있었다. 로마가 평화의 시기를 맞고 대단한 황제들이 나타나 그 위세를 떨쳤지만 로마가 동서로 나눠지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인류사의 최고 제국이 사라질 때도 요란하지 않고 스르르 자취를 감췄다. 로마가 그토록 오래 운용된 것은 국가와 시스템을 잘 운용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더 이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로마는 소리 없이 무너졌다. 1천년이 넘는 제국이 스러지면서 여러 전조가 나타났지만 로마인들은 몰랐다. 거대한 제국이 별일 없이 자신들을 지켜줄 줄 알았다. 세계 최대 제국의 멸망 연도는 말해도 정확한 일자는 알지 못한다. 그냥 사라졌다.

 어떤 일이든 전조가 있다. 공교육이 위기다. 교육계에 여러 전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제국이 멸망하기에 앞서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듯 교육계에 음산한 분위기가 드리웠다. 교육을 맡은 사람들의 음란행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난다. 이번엔 부산에서 한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성행위를 흉내 내는 꼴사나운 짓을 했다.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하는 건 기본이었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고 강변하면 일부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 잦다. 제국의 힘이 빠지면 국경을 쳐들어오는 야만족이 바쁘다. 제대로 대응을 못 하는 제국을 비웃기나 하듯 제집처럼 야만족이 제국의 수도 로마를 겁탈하게 된다. 교육계가 음란병이 들어 입에 담기조차 힘든 일들이 잦다 보면 공교육에 머물 사람이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오래지 않아 아예 공교육이 외면당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 당시 제국의 중심인 로마가 야만족에게 수탈당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로마는 한 번 침입을 받은 후 여러 차례 농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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