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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오래된 배타성 넘어서기
우리들의 오래된 배타성 넘어서기
  • 이유갑
  • 승인 2017.08.31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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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갑 (사)지효청소년인성교육원 이사장ㆍ전 경남도의원ㆍ심리학박사
 처서를 지나면서 한여름 내내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어쩐지 힘을 잃어 가는 듯하고, 요 며칠 동안은 아침저녁으로 가을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늘도 조금씩 높아지면서 청명한 가을 하늘을 닮아가고 있다. 절기는 못 속인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음을 다시 깨닫는다.

 2000년, ‘새로운 세기(New Millenium)’가 시작되면서 온 세상은 세계화(globalization)의 물결로 넘쳐났다.

 이 무렵 우리에게 친숙해진 또 하나의 용어는 ‘지구촌(global village) 시대’라는 것이다. 이 말에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간이 오손도손 모여 살던 작은 촌마을처럼 가까워졌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꼭 한국 땅에서만 살지 않고 전 세계 어디에라도 가서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에 살더라도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와 그 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남을 받아들이거나 인정하는 개방성보다는 밀어내는 배타성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이렇게 배타성이 강한 원인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형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농경 위주의 민족으로서 조상 대대로 한 지역에 정착하며 살아온 정주(定住) 문화권에 속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토록 고향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고, 특히 여성들은 10리 바깥의 세상도 구경하기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것이다.

 이 정주 문화권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아끼고, 가족을 포함한 이웃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혈연, 지연 등을 중시하는 ‘집단주의적 가치관(Individuallism)’이 제일로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자리매김하게 됐으며, 두레와 같은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서 상부상조하면서 살았다.

 전통적인 한국인들의 배타성을 보여주는 몇 가지의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교적 가치관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여성들도 시집을 가더라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은 그대로 간직했다. 민주주의가 일찍 발달하고, 우리보다 양성평등이 훨씬 더 정착된 서구 사회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아주 드문 경우이다. 그만큼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핏줄을 중시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우리는 아주 결연한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드러낼 때 ‘내가 성을 간다’라고 한다.

 둘째, 남이 낳은 아이를 잘 입양하지 않는 사회적인 풍토이다. 이 역시 나의 핏줄이 아닌 다른 핏줄은 믿지 못하고 배척하려는 심리적 속성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6ㆍ25 전쟁 이후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많은 아이들이 국내의 가정에 입양되지 못하고, 외국으로 입양을 가야 했던 시절의 아픔도 이런 바탕 위에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외국의 아이들, 심지어는 장애아까지도 입양하는 서구 선진국 국민들의 태도는 우리와 많이 대비된다.

 셋째, 타지에서 살러 들어온 사람들을 그 지역의 원주민들이 따뜻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배척하고 무시하면서 동네 가운데에 살지 못하게 하고, 외딴곳에서 그 사람들끼리 살도록 격리했던 인습도 있었다.

 이렇게 오래된 배타적 성향 때문에 우리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우리에게 다가온 근대화와 부국강병의 기회를 놓쳤다. 오히려 서양의 문물을 배척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백성들을 오도하는 척화비를 전국 곳곳에 세우기까지 했다. 그 결과, 우리는 뼈아픈 망국의 시절을 겪었고, 긴 세월 낙오된 나라의 국민들로서 힘들게 살아왔던 것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듯하지만,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근로자들을 무시하고 따돌리는 배타적인 습성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10쌍의 부부가 결혼하면 1쌍 이상이 다문화 가족인 시대에 접어 들었다. 이제는 국민 개개인이 단일 민족국가라는 지나간 과거에서 벗어나서, 나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전통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너그러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정신적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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