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2:43 (수)
감정의 제 자리에서
감정의 제 자리에서
  • 이주옥
  • 승인 2017.09.05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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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사람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은 무생물과 구분되는 가장 원초적인 요소일 것이다. 즐거움, 슬픔, 괴로움을 그때그때 표현하고 그런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가장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함에서 오는 부작용과 악영향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21세기 사회는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마케팅이 주류를 이루는 산업사회는 소통의 커뮤니케이션이 관계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진입에 서비스 사업의 발달은 무엇보다 괄목할 만한 일이다. 기계와 사람은 공존할 수밖에 없고 거기에 유익한 매개가 되는 사람의 감정은 더없이 중요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노동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중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따로 감정 노동자라고 구분된다. 감정노동자는 보통 텔레마케터나 백화점을 비롯한 판매 서비스업 종사자 그리고 각종 업체에 근무하는 안내원이나 판매원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시종일관 호감 어린 어투나 표정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배제해야 하는 난점을 지니고 있다. 상대방의 감정을 지켜야 하며 또한 고조시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버려야 하는 괴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반면 그들이 받는 심적 고통과 부작용은 여러 방면으로 표출되고 부각돼서 그 심각성이 자못 크다.

 얼마 전 숙명여대 대학원생이 제출한 논문 ‘대기업 신입 비서의 감정노동에 관한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젊은 여성이 가장 선망하던 기업 비서도 감정 노동자에 분류된다고 한다. 그들은 스마일 증후군, 즉 언제 어디서나 웃는 얼굴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족 앞에서까지 의식적으로 웃어야 한다니 여성 직업의 꽃이 아니라 극한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사의 감정에 덩달아 동승해서 함께 그 감정의 골을 건너야 하니 얼마나 고충이 클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나의 감정 상태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감정에 편승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하면 정작 나 자신의 감정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서는 스튜어디스와 함께 여성들이 선망하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한때는 직장의 꽃으로까지 표현됐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는 감정이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고 한다. 욕설은 물론, 편견에 따른 처우와 몰이해로 받는 스트레스로 신체적인 고통과 마음의 고통이 따른다. 임원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성희롱적인 인식도 갖고 있다고 한다. 항상 웃어야 한다는 강박증은 가면성 우울증이라고 불리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니 심각함은 상상 이상이다.

 사람은 기쁠 때 웃고 슬프면 우는 것이 가장 정직하고 정신건강에도 옳은 일이다. 또한 누가 뭐래도 그것이 진실이다. 그런데 내 감정에 역행해서 기쁜 일이 있어도 맘대로 웃지 못하고 슬픈 일이 있는데도 활짝 웃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감정에 충실하지 못함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게 되고 결국은 관계가 어긋나기까지 한다. 급기야는 그 감정선을 제대로 넘지 못해서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일어나지 않던가.

 ‘힐링.’ 치유를 뜻한다. 언젠가부터 마치 유행어처럼 번진 힐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착하고 있다. 어쩌면 힐링은 단순한 ‘쉼’이기보다 자신 본연의 감정을 되찾는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거스르고 남의 감정을 우선시하는 직업은 정작 본인에게는 다른 우울증으로 가는 길이라니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보는 듯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격변하는 세상은 그에 반해 많은 것에 혼란을 야기 시키고 모든 것이 풍요롭게 넘치는 세상은 또 다른 결핍을 부른다. 진솔한 웃음과 울음이 자리를 잃고 헤맬 때 행복은 또 어디에서 이름을 잃고 다른 형태로 자리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 본연의 감정을 제 자리에서 제대로 발산하는 것이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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