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1:03 (목)
섭식장애와 가족사랑(1)
섭식장애와 가족사랑(1)
  • 이영조
  • 승인 2017.09.11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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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사람들은 식사를 통해 감정을 교감한다. 가족들은 식사시간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 정담을 나누며 사랑을 키워가고 비즈니스맨은 식사를 하면서 일의 성공적인 결실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이와 같이 음식은 사회활동을 이어주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음식을 먹으면서 포만감을 느끼며 동시에 행복감도 만끽한다.

 음식을 먹는 것은 생명 유지활동 외에도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감성적인 교감을 이루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섭식장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섭식장애는 자신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위험을 담고 있다.

 섭식장애는 먹는 것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거식증과 단시간에 너무 많이 먹는 폭식증을 모두 포함한다. 섭식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은 하나로 연결된다.

 비만과 체중증가에 대한 과도한 우려와 날씬해지려는 욕망이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신경성 과식증을 일으키는데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정상 체중 유지도 거부하고 지속적으로 살을 빼려는 강박적 행동에서 기인한다. 반대로 신경성 과식증은 음식을 먹을 때는 맛에 취해 마음껏 먹지만 그 후 살이 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해서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 두 가지 모두 체중증가와 날씬해져야 한다는 극도의 불안 심리가 정신에 영향을 미쳐 나타난 결과다.

 여름방학은 학생들이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며 과시하고픈 욕망이 일어나는 시기다. 남학생은 근육질 몸매를 만들기에 열중하고 여학생들은 여성미를 뽐내고 싶다. 이들은 음식을 조절하며 운동으로 멋진 근육과 각선미 만들기에 전념한다. 젊음은 언제나 활력 넘치고 풋풋하고 싱그럽다.

 어느 날 온몸에 힘이 없어 보이는 여학생이 엄마 뒤에 숨듯 센터에 내방했다. 한창 멋을 부릴 나이인 학생은 외모도 가지런하고 얼굴도 예쁘게 생긴 소녀였다. 그런데 체형은 약간 마른 느낌이 들어서 조금 살이 찌면 훨씬 보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먼저 말씀을 시작했다. 딸의 문제로 상담실을 찾았다고 하시며 마음속에 있는 걱정거리를 꺼내놓으셨다. “우리 딸이 곧 대학교에 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큰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니, 딸이 음식을 먹고 나서는 억지로 구토를 일으켜 위에 있는 음식을 모두 꺼내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과 반대로 식탐이 대단한 사람처럼 음식을 먹어대는 폭식증을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학생과 개인 상담을 시작했다. “언제부터 음식을 먹고 구토하는 증상이 생겼나요?” 폭식과 구토의 반복된 시기와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 동기를 차근차근 물어가며 실마리를 풀어봤다.

 그녀가 말하는 발병 원인은 의외로 간단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너 요즘 살찐 것 같다. 대학교 가면 남자친구도 사귀어야 하는데… 라고 말했어요. 저는 이 말을 들은 후부터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고 오로지 살을 더 빼야 한다는 강박적 생각에 사로잡히게 됐어요.” 흔히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의 농담조 한마디에 그녀는 다이어트에 대해 정신적 포로가 됐다.

 상담을 시작하고 심리치료에 들어갔어도 “자신은 뚱뚱하다. 나는 지금보다 더 날씬해져야 한다”는 본인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음식의 맛과 먹는 즐거움을 아는 그녀는 식사 때가 되면 먹고 싶은 음식을 양껏 먹으며 그 즐거움을 만끽했고 살이 찔 것에 대한 두려운 생각은 먹은 음식물을 토해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폭식과 구토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이미 뇌에 프로그래밍 됐고 습관화됐고 좀처럼 그녀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음식을 먹고 구토를 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구토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음식을 올리는 상상을 하고 인위적으로 ‘웩웩’ 하는 행위를 몇 차례 반복하면 별로 힘들지 않게 음식물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다.

 그녀의 섭식 행위가 주는 또 다른 문제는 가족들이 받아야 하는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또 다른 머릿속에는 구토하는 아이를 떠올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빠는 어떻게든 말려 보려고 달래보기도 윽박지르기도 해 보지만 이제껏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고 반 체념 상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야위어 가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근심이 깊어가는 부모의 마음과 다르게 정작 본인은 아직도 살이 찔까 봐 걱정을 하고 있다.

 “본인이 뚱뚱하다고 생각하나요?” “네, 아직도 더 날씬해져야 해요.” 자신이 그토록 날씬해져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지금 상태도 충분히 날씬한데 왜 살을 더 빼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녀는 당연한 듯 말했다. “제가 날씬해져야 엄마, 아빠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사랑을 받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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