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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이름으로’ 행하면서도…
‘교육의 이름으로’ 행하면서도…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17.09.2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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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국장
 기독교 신자는 기도를 마칠 때 ‘예수(님) 이름으로…’란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마음에 담아둔 껄끄러운 죄나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을 바라고 사람과 전능자 사이에 예수를 끼워 넣는다. 기도해놓고 예수 이름이 빠지면 기도한 모든 내용이 허사가 될 수 있다. ‘이름’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 힘이 실재하든 그 힘에 의미만 부여하든 상관이 없다. 이름을 넣고 안 넣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결국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를 다 수용하지 못해도 어떤 특정 이름으로 행한 악행을 보면 고개가 끄떡여진다. 종교의 힘을 깔고 마녀라는 이름을 붙여 많은 사람을 불 속에 끌어넣어 처형했다.

 14세기 유럽 수도원에서 펼쳐지는 살인사건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은 사람을 독살하는 흉계라는 사실을 파헤치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탁월한 재미를 주는 책이다. 이 책 여기저기서 나오는 종교적 독선과 편견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한다는 내용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담쟁이덩굴이 촘촘하게 그물 친 수도원은 음침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수도원 안에는 수도사들이 있고 수련사도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삶은 절대자인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데 있다. 세상이 모순과 부조화로 채워져 있듯 수도원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원초적인 선을 추구하려는 사람이 펼치는 악이 더 무섭다는데 눈이 휘둥그레질 뿐이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금서는 삶을 오그라들게 할 정도로 패악스럽지 않다. ‘웃음은 예술이며 학식 있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세상의 문이다’는 내용을 다룬 ‘시학’을 수도사들이 40년 동안 못읽도록 막았다. 내용은 둘째로 치고 책을 이단이라 규정했기 때문이다.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불온한 책의 접근을 막는 걸 하나님의 뜻으로 여겼을 것이다. 호르헤는 ‘신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독살했다. 잘못된 믿음을 신의 이름에 걸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얼토당토않은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지막지한 일은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다.

 누구의 이름으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난무했는가? ‘권력의 이름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문화예술인들을 관리했던 지난 정권은 큰 잘못을 했다. 예술가는 예술 행위로 의사 표현을 하면서 정권을 비판하고 이념을 표현할 수 있다. 힘을 가진 권력이 종이에 줄을 긋고 좌ㆍ우 나눠 관리했다. 블랙리스트가 있으면 화이트리스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세 때 마녀라는 이름을 붙여 처음부터 색깔을 단정한 어리석은 짓이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로 태어났다. 블랙리스트는 위험한 물건이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색출하겠다는 가증스러운 발상이다.

 우리나라 교육계는 가장 앞장서 변화의 바람을 쐬면서도 무풍지대에 머무는 경우가 잦다. ‘교육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을 보면 대체로 산뜻하지 못하다. 그저 이전 교육을 답습하는 데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교육이 제자리에 머무는 국가는 사회 전체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해마다 바뀌어도 아직도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 수능을 몇 년 앞둔 중학생조차 아리송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육의 이름을 되뇌면서 ‘구태’라는 단어가 떠올라 애써 머리를 세게 흔들어야 한다.

 경남의 한 중학교가 학교폭력 등 문제로 교육청 감사를 받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벌어지는 비민주적인 행태는 ‘교육의 이름으로’ 행하는 마녀사냥 같다. 감사라는 칼을 들고 특정인을 옥죄는 행위는 ‘교육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붙이면 안 된다. 교육계에서 ‘교육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에 딴지를 걸 마음이 없지만 비교육적인 요소를 걷어내는 데 훈수 두기를 주저하면 안 된다. 아이들의 꿈이 영그는 학교가 음침한 벽으로 둘러쳐진 중세 수도원 같은 분위기가 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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