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4:07 (수)
기초의원만이라도 공천제 폐지해야
기초의원만이라도 공천제 폐지해야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 승인 2017.09.2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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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지난 대선에서 각 당 후보들은 저마다 강력한 지방자치를 실현하겠다는 공약을 했지만 현재 돌아가는 형국은 완전히 거꾸로다. 민주당은 안정적 정국운영과 장기집권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내년 지방선거에 올인하겠다는 자세고 자유한국당은 상향식 공천을 줄이고 전략공천을 확대할 태세다. 모두 중앙당의 역할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여당의 지방선거 올인은 문 대통령의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자치 실현’ 공약과는 배치된다고 볼 수 있다. 장기집권 기반으로 주요 지방자치단체장을 쓸어가겠다면서 내실 있는 지방자치를 하겠다는 것은 말장난이다. 지역유권자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면서 도입한 상향식 공천을 줄이고 전략공천을 확대하겠다는 것도 지방의 역할을 줄이고 중앙당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물론 인적 쇄신이 절실한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전략공천의 필요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당이 내건 공약과 반년도 안 돼 거꾸로 가겠다는 것은 대선공약을 휴짓조각으로 만드는 약속 위반이다. 상향식 공천제는 지역사회 기득권이 재생산되는 구조로 정치 신인의 진입이 어렵다는 이유를 내걸고 있으나 이런 문제점을 몰랐을 리 없다. 상향식이든 전략공천이든 당의 이익에 부합하면 대선공약이야 어떻든 유리한 쪽으로 가겠다는 것 외는 아니다. 전략공천은 지방에 대한 중앙정치권의 입김을 강화하고 지방을 종속시키는 출발이다. 선거 때마다 게임의 룰을 입맛대로 바꿔서는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 이런 풍토에서 책임 있는 정치도 커갈 수 없다. 한번 약속한 것은 국민적 요구가 없는 한 지키는 것이 멀리 보면 더 낫다. 그때그때 조령모개식으로 바꿔서는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

 구세력에 불어닥치는 사정 정국 회오리도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국정원 댓글 부대 운영, 블랙리스트 등에 대한 수사확대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진상규명의 성격보다 적폐세력 뒤 캐기를 통해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혹시 희석될 수 있는 적폐 이미지를 유지 내지 강화시켜 내년 지방선거를 싹쓸이하겠다는 의도로 읽혀진다. 이런 식이라면 내년 지방선거는 여야 사활을 건 격전장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지역을 위한 고민은 없고 정권 안보, 정권 흔들기만 난무하는 선거가 돼서는 지방선거라 할 수 없다. 이런 선거에서 지방자치가 바로 설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내실 있는 지방자치도 물론 요원하다. 지방선거까지 정권을 건 격전장으로 만드는 것은 현 정권에도 도움이 안 된다. 지면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고 이겨도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실익이 없다. 전략 지역 단체장을 석권한다고 다음 정권 획득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은 섣부르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산적한 현안을 푸는데도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압도적 지지도 만족 못 해 지방 정권까지 장악하겠다는 욕심은 국민의 견제심리를 자극할 뿐이다. 야당의 전략공천 확대도 부작용만 클 뿐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인위적 인물 교체는 또 다른 역풍을 불러온다. 역대 선거가 증명한다. 국민들은 물러나야 할 인물은 가려낼 능력이 있다.

 북핵, 사드, 일자리, 증세 등 산적한 지난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치권은 지방선거에 가급적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최소한 기초의원, 보다 더는 기초단체장까지 공천제를 철폐하는 것이 맞다. 지금처럼 국회의원 심부름이나 하는 지방의원을 동원해 지방선거를 치르고 그 전리품을 정쟁에 이용하려는 식이면 강력한 지방자치 실현이라는 말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현역 지방의원 거의 절대다수가 공천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를 중앙정치권은 다시 한번 곱씹어봐야 한다. 더구나 공천폐지와 같은 기득권을 내려놓은 문제는 정권 말기로 갈수록 관철하기 힘들어진다. 성숙한 지방자치는 지방을 중앙정치권과 분리하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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