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3:39 (금)
섭식장애와 가족사랑(2)
섭식장애와 가족사랑(2)
  • 이영조
  • 승인 2017.09.26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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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무심히 흘러나온 그녀의 말속에서 문제를 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날씬해져야 엄마, 아빠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니, 친구들이 살을 빼야 한다는 말에 그런 게 아니었나요?” 의아한 마음으로 다시 되물었다. 우물쭈물하며 난감해하던 표정을 짓더니 또 다른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어릴 때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제가 제일 예쁜 아이인 줄 알기에 충분할 정도로 ‘항상 우리 공주’ 이런 말을 수식어로 사용하셨어요. 그런데 제 밑에 동생이 태어났고 그것은 제겐 하늘이 무너지는 꼴이 됐어요. 왜냐하면 저에 대한 부모님 사랑은 모두 동생에게로 돌아갔고 저는 부모님 안중에도 없었어요. 아빠는 저보다 동생을 더 우선시했고 그럴수록 저는 동생이 미웠어요. 그래서 엄마가 안 볼 때 동생을 꼬집고 발로 툭툭 차기도 했어요. 동생이 울면 어김없이 저를 혼내곤 했어요.” 온전히 자기 차지였던 부모님 사랑을 송두리째 빼앗긴 어린아이 감정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딸 날씬하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참 예쁘다. 술을 한잔하시고 들어오신 아빠가 무심코 한 말을 듣는 순간 내 기분은 최고의 칭찬을 들은 것 같이 들뜨고 가슴이 뛰었어요. 바로 이거구나, 내가 날씬해지면 다시 사랑을 받을 수 있겠구나, 부모로부터 다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저는 날씬해지기 위해 모든 노력을 했어요. 인터넷에서 다이어트 정보도 찾아보고 그것을 차례대로 실천을 해 봤어요. 그런데도 살이 빠지지 않아서 밥을 먹자마자 토해내는 방법을 쓰고 있어요.” 예뻐지기 위해서 살을 빼야만 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건강미인 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적당한 근육과 지방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음식섭취를 통해서 인체에 고루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하는데 음식을 먹고 구토를 해서 음식물을 몸 밖으로 끄집어내는 방법은 역류성 식도염, 기도 손상도 우려되고 급기야 심각한 영양 불균형을 초래한다.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체형은 사실대로 말하면 깡마른 몸을 하고 있다. 어깨와 팔뚝에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이고 치마를 입고 있는 무릎 아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녀는 여전히 살을 더 빼야 한다며 “어떻게 하면 살을 더 뺄 수 있을까요?”라고 묻고 있다.

 그녀의 눈은 마치 볼록렌즈를 쓴 것 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 원인은 뇌의 반응이다. “내 몸은 뚱뚱해”라고 잘못된 데이터가 입력된 뇌는 그녀의 모든 생각을 바꿔 놓았고 자기 몸이 날씬할 정도를 지나 야위어 있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눈에는 뚱뚱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뇌의 잘못된 프로그램을 바로잡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녀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부모님과 상의를 했다.

 부모님들은 흔히 아이들이 느끼는 부모와의 애착 관계에 대해 잘 모르고 계셨다. “동생이 태어난 이후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 불만을 느껴온 어느 날 우리 딸 날씬하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참 예쁘네라고 아빠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 그 말을 들은 후 자신이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방법은 아니, 동생으로부터 사랑을 뺏어올 방법은 자신이 날씬해 지는 것 뿐이다”라고 생각하고 살을 빼기로 결심했고 그 정도가 지나쳐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기게 된 겁니다. 그제야 심각성을 눈치챈 부모님이 “어떻게 하면 우리 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덧붙여 딸의 병을 고칠 수는 있겠냐고 물으셨다.

 “집에서 생활할 때 조금이라도 잘 한 것이 있다면 칭찬을 많이 해 주세요. 한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셔도 의도적으로 칭찬을 해 주세요. 그리고 칭찬을 듣는 딸이 정말 그런가? 하고 흡족해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칭찬을 해 주셔야 합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피식 웃으시며 “어떻게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해요? 그건 너무 가식적이지 않나요?” 하시며 곤란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부터 하시는 부모님의 칭찬이 빙산처럼 얼어붙은 따님의 마음을 녹이는 작은 불씨가 될 겁니다. 자식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데 하지 못 할 일이 있겠습니까?” 재차 다짐을 했다. 부모님들은 난감한 기색을 보였지만 노력해 보겠다고 약속을 했다.

 나는 다시 그녀와 마주 앉았다. 그녀는 아직도 낯설어하고 어색한 표정이다.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상담실에 찾아온 기분이 어때요?” 그녀는 “제가 여기에 와야 되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질문과 다소 동떨어진 대답을 했다. 자신이 살을 빼야 한다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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