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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증후군을 슬기롭게 이겨내기
명절증후군을 슬기롭게 이겨내기
  • 이유갑
  • 승인 2017.09.28 2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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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갑 (사)지효청소년인성교육원 이사장 전 경남도의원ㆍ심리학박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명절만 같아라’ 하면서 옛 어른들이 일 년 중에서 최고의 절기로 치던 한가위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가고, 온갖 햇과일들이 시장에서 주부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로 시작되는 노천명의 장날이라는 시가 기억에 새롭다.

 이맘때 쯤이면 기분 좋은 추억으로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음식 냄새 풍기면서 대문 앞에서 미소 띤 얼굴로 조카들을 반가이 맞아주시던 큰어머니의 넉넉한 모습, 집안의 남자들이 모여서 윷을 놀거나 화투를 칠 때면 집안의 여자들은 둘러앉아서 이야기의 꽃을 피우다가 술이나 음식의 주문이 있으면 동동걸음을 치던 모습, 명절이 끝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면 큼지막한 음식 봉지를 안겨주시던 할머니의 정겨운 모습 등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모습들은 서서히 빛바랜 사진첩 속에서 보거나 옛날 동화책에서나 읽어야 할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됐다. 오히려 이른바 ‘명절증후군’으로 상징되는 가족들 간의 새로운 갈등에 직면해 있다. 이와 함께 딸만 있는 집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명절 때마다 겪는 애달픈 사정도 간단하지 않다.

 명절이 지나고 나서 이 땅의 많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형태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날로 심각해지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는 기득권자인 남자들이 나서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절대적인 과제이다.

 남태평양에 자리하고 있는 뉴질랜드는 전 세계에서도 양성평등의 제도와 의식이 가장 모범적으로 자리 잡았고, 여성들의 사회적인 참여가 당당하게 이뤄지고 있는 나라이다. 몇 년 전 이 나라에서는 행정부의 수반인 현직 총리와 다음 정권에서 총리가 될 야당의 당수가 여성이며,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 원장과 영연방에서 임명한 총독이 동시에 여성인 시기가 있었다.

 경제발전의 정도에 비해서는 양성평등의 지수가 한참 뒤처져 있고,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이 깨기 어려운 유리 천장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뉴질랜드는 여성들에게 무궁한 가능성과 삶의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은 여자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뉴질랜드로 대표되는 서구 선진국들의 교육 내용과 교육적 가치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합리적인 현실의 법과 제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을 비롯한 여러 첨단의 과학 분야에서 나오는 연구의 결과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자와 여자의 능력과 특성의 차이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과는 달리 그다지 크지 않으며, 그 차이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예를 들어서, 남학생은 여학생에 비해 수학과 과학을 더 잘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 뉴질랜드 고등학교 전체 남녀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과목의 평가에서 여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높게 나오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사람이 만든 모든 법과 제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바뀌어져야 한다. 능력과 특성의 측면에서 남녀 간에 본질적인 차이가 별로 없다면, 이런 사실에 기초해 후진적인 가치관과 의식에서 벗어나서 여성들에게 불공평한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순리이고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혁명하듯이 바꿀 수는 없지만, 합리적인 시각으로 찬찬히 살펴보면 지금의 시대 흐름과 도무지 맞지 않는 모순을 찾아내고 변화의 물꼬를 터 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딸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자신의 아내에게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필자를 포함한 이 땅의 남자들이 진지하게 새겨봐야 한다. 아울러서 여성들의 능력과 자질을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이번 명절에는 주부들이 명절증후군이라는 심신의 스트레스를 겪지 않고, 온 가족이 두루 즐거운 만남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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