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2:30 (목)
손녀와 알밤
손녀와 알밤
  • 김병기
  • 승인 2017.10.09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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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기 김해중부경찰서 112종합상황실 경위

 교통사고로 아내가 입원을 하지 않았던 지난해 겨울만 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산을 찾았다. 누구처럼 화려한 등산복이 아니어도 괜찮았고, 그저 물병 하나 챙기고 사과 한 쪽 배낭에 넣어 올라간 뒷산(임호산)의 풍광이 너무 좋았다. 동쪽으론 구지봉 아래에서 칠점산 자락으로 드나드는 경전철이 굽이쳐 달리고, 주작이 노닐던 남쪽 바다는 황금빛 넘실대는 김해평야가, 함박산과ㆍ경운산으로 이어지는 서쪽에다 목 내민 거북이 놀던 구지봉 북쪽까지 어디 한 곳 눈을 뗄 수 없는 우리 터전이다.

 추석 이틀 전 다친 발 통증에 투정을 부리는 아내에게 슬며시 뒷산에 갈 수 있는지를 묻자 아직은 어렵다 손사래다. 옆에 있던 6살 손녀가 “내가 갈래”라며 따라나선다. 걸을 수 있는지 걱정돼 묻자 갈 수 있다 한다. 그래 힘들어 올라가지 못하면 돌아오면 되지 싶어 운동화를 챙겨주고 재잘거리는 손녀를 동행 삼아 집을 나섰다. 산은 처음 올라간다며 뒷산을 쳐다보며 손녀가 묻는다. 어디까지 가는지, 산토끼는 있는지, 도토리 모으는 다람쥐도 볼 수 있는지를.

 집을 나서자 아스팔트 열기에다 오가는 사람들의 행렬에 놀란 손녀가 손잡기를 연속 시도하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한다. 경원고등학교를 지나 임호성당을 거쳐 봉명중학교 옆길로 오른다. 지금까지는 주택가였지만 막상 산길로 접어드니 손녀는 겁이 나나 보다. 하늘을 가린 울창한 소나무 그늘에 드리운 잡초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많은 이들이 다니는 곳이라 제법 오솔길이 됐지만 여전히 벌초 못 한 분묘 앞 개장 안내 목걸이가 이채롭다.

 뒤따라오는 손녀를 채근해 앞세워 가는데 한곳에 모인 밤송이로 보아 누군가 떨어진 밤송이에서 알밤을 주운 흔적이다. 그때 밤나무와 도토리나무 아래에서 알밤 1알을 주워든 손녀가 해맑게 웃는다. 먹을 수 있는지. 며칠 전에는 벌레 먹은 알밤이라 지나쳐 갔는데 어느새 추석 맞아 여물었나 보다. 여기보다 위쪽에 가면 더 많은 알밤이 있다 하니 손녀는 다람쥐 걱정에 도토리를 찾으며 산토끼도 알밤을 먹는지 묻는다.

 위로 올라가니 지난해 이맘때는 구경하기가 어려웠는데 여기저기 알밤이 보였다. 정상 산행은 잠시 미루고 손녀와 알밤 줍기에 나섰다. “여기도 있어요.” 손녀는 신이 났다. 하나둘 알밤 숫자를 세다 조금이라도 거리가 떨어지면 가시덩쿨을 헤치며 겁 없이 따라붙는다. 주운 알밤에 어느새 호주머니가 불룩하다. 알밤을 줍다 팽이 도토리 1알을 주워든 손녀가 다람쥐를 찾는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좋아하기에 다 가져가고 산토끼 먹이 알밤만 남았다며 따라오기를 잘했다 한다.

 “따- 딱” 소리에 도토리나무를 쳐다보니 새끼 딱따구리다. 손녀의 알밤이 딱따구리로 옮겨간다. 쳐다보는 사람이 있건 말건 딱따구리는 열심이다. 해지기 전 배를 채우기 위해 나무를 맴돈다. 산속 해는 빨리 진다. 올라올 때보다 공기 서늘하고 어둡다. 눈을 떼지 못하는 손녀에게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하산을 했다. 손녀는 불룩한 호주머니를 쓰다듬으며 자랑할 일이 생겼다며 콧노래다. 내년에도 가락국 시절 무등 태워 오른 뒷산 어딘가 흔적을 기대하며 손녀와 알밤을 주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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