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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와 개저씨
아재와 개저씨
  • 이광수
  • 승인 2017.10.17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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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아재와 개저씨는 모두 아저씨의 다른 표현이다. 아재는 아저씨의 낮춤말이다. 친족 계촌 상으로 5촌 이상을 아저씨라 부른다. 정식 명칭은 종숙(從叔)이며 친근한 호칭은 당숙(堂叔)이다. 계촌 수가 늘어나면 몇 촌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러나 잘 모르는 중년 이상 남자를 상대할 때 부르는 호칭도 대개 아저씨이다. 이처럼 아저씨의 낮춤말인 아재를 젊은 층에서는 친근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대신 개저씨는 욕설의 접두어 격인 개가 붙어있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개념 없는 아저씨’의 준말로 딱딱하고 재미가 없는 ‘꼰대’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킨 말이다. 아재와 개저씨는 40~50대 중년 남성을 대상으로 긍정과 부정의 이미지를 가미해 젊은 세대들이 부르는 말로 기성세대에 대한 호불호를 냉소적으로 표현한다. 젊은 세대가 호의적인 감정으로 부르는 아재는 기존의 기성세대와는 달리 탈권위적이며, 시대적 트렌드를 적극 수용해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부류로 친근감을 느낀다.

 아재 신드롬은 배우 유해진을 필두로 이성민, 설경구, 마동석, 조진웅 등이 출연한 TV 프로나 영화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TV 진행 MC 등 연예인들이 가세함으로써 아재 열풍을 일으켰다. 유해진이 지난해 출연한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 툭툭 던진 농담인 “밥 좀 데워 먹어-식혀(시켜) 먹지 말고”와 “촬영 안 할 때는 복근 밥(볶은 밥) 먹는 것 아냐” 등 말꼬리 잡기 농담이 ‘아재 개그’로 불리게 돼 일약 ‘아재파탈’의 대명사격이 됐다.

 그 뒤 수백 가지 아재 개그가 신조돼 사회관계망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화장실에 사는 두 마리용은 ‘신사용ㆍ숙녀용’, 아프지도 않은데 매일 집에서 먹는 약은 ‘치약’, 추장보다 높은 사람은 ‘고추장’ 등 끝이 없다. 이처럼 아재와 개저씨로 상반된 대접을 받는 40~50대 중년들은 사랑과 혐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직장에서는 소위 중견간부로서 부하직원을 통솔하고 리드할 위치에 있지만 정작 자신들이 상사들로부터 물려받은 권위나 존경은 설 자리를 잃었다. 옛날식으로 권위적으로 부하직원을 다뤘다가는 갑질이나 성희롱으로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영원한 ‘꼰대’로 낙인찍히기에 십상이다. 아재와 개저씨는 남성 중심의 방송가에 반기를 든 TV 프로그램에서도 토론 주제가 돼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EBS의 ‘까칠남녀’와 온 스타일의 ‘뜨거운 사이다’가 대표적이다. ‘까칠남녀’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담론이 그침이 없다. ‘뜨거운 사이다’는 현안에 대해서 여성 MC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때 나오는 주제들은 직장 내 성차별부터 맘충(진상엄마를 벌레에 빗댄 말)까지 다양한 소재가 다뤄진다. 여기에 아재와 개저씨가 반드시 등장해 토론의 열기가 뜨겁다. 두 프로의 공통점은 그동안 배제됐던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는 점이다. 소위 개저씨에 속하는 중년 남성들로부터 모멸감을 느꼈던 성차별적인 말이나 행동들이 거의 여과 없이 표출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요즘 정치권에서도 아재 바람이 불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민생탐방을 하다가 한 시민에게 “다이어트가 한국어로 뭔지 아세요? 내일부터래요”라고 했다. 이에 질세라 장하성 정책실장은 대통령이 부동산 대책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더 강력한 대책을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있다”고 한 말을 패러디해서 “요즘 대통령 주머니를 채우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아재 개그를 날렸다. 걸 그룹 마마무가 ‘아재 개그’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발표해 유행을 대변한 것은 꽤 지난 일이다.

 아재와 개저씨에 대한 풍자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회현상이지만 중년 세대는 자신들에게 변명의 기회마저 주지 않는 일방적인 폄훼라고 푸념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화 된 정부와 경제발전은 바로 40~50대와 그 이전 꼰대 계층이라 부르는 60~70대의 노력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겪은 고난의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은커녕 뒤처지고 푸대접받는 신세로 전락한 자신들에 대한 사회의 냉대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경쟁에서 낙오되는 시대를 맞아 나름대로 변신은 필요하다고 본다. 나 역시 개저씨가 되기는 싫어서 어느 연구소에서 개발한 아재 테스트와 개저씨 테스트 항목을 가지고 채점해 봤더니 아재 축에는 낄 수 없었지만 개저씨는 면한 점수를 받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세상 살기가 갈수록 각박해지고 힘이 드는데 젊은 세대들로부터 아재와 개저씨로 차별해서 대접받는 신세가 됐다는 게 한심하다. 저들도 나이 들면 같은 신세가 될 것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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