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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발굴ㆍ조사로 과거 밝혀 미래를 연다
문화재 발굴ㆍ조사로 과거 밝혀 미래를 연다
  • 황현주 기자
  • 승인 2017.10.18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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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강산문화연구원 2015년 설립ㆍ320여건 실적 김해 퇴래리 철기 다량 발굴
가야 강력한 철ㆍ무역國 증명 해상ㆍ대륙세력 조화 이뤄
▲ 김해 퇴래리 1015-1번지 일원 공장신축부지 내 삼국시대 구 2ㆍ3ㆍ4ㆍ5호 전경.

 김해시 외동에 위치한 (재)강산문화연구원은 문화재 유적과 유물 등 발굴과 조사, 학술연구 등을 진행하는 곳으로, 특히 매장문화재 조사와 관련해 지표조사와 입회조사, 표본조사, 시굴조사, 정밀발굴조사 등을 중점으로 진행하고 있다.

 강산문화연구원은 민족문화를 지속적으로 계승ㆍ발전시키고 나아가 사회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2015년 민법제32조(비영리법인의 설립과 허가)에 의거해 문화재청장으로부터 법인 설립허가를 받은 곳이며, 김용탁 원장 외에 8명의 임원과 19명의 행정ㆍ연구직원들이 소속돼 있다.

 연구원이 설립된 지난 2015년부터 현재까지 총 328건의 문화재가 조사ㆍ연구 됐다. 이곳은 금관가야의 발생지인 김해를 비롯한 전국 각지를 무대로 매장문화재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특히 김해 퇴래리를 비롯한 지역에서 대량의 금관가야 유적과 유물을 발견함에 따라 현재보다 더 큰 학술적 가치와 역사성을 입증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가야문화의 우수성을 세상에 증명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고 있다. 강산문화연구원 역시 신비에 묻혀진 가야의 역사가 후손들에게 잊힌 역사로 남기 전에 서둘러 가야역사에 대해 재조명하는 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6개의 소국으로 구성돼 있었던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에 전혀 뒤지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채 562년 신라와 백제에 병합되고 말았다. 발견된 유적이나 유물의 개수보다 문헌상 기록에 의존하는 형태를 더 많이 띠고 있는 가야역사는 현재까지도 학계를 비롯한 일반인들에게도 신비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강산문화연구원은 가야의 존재를 강력하게 증명할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으로 하여금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학술조사가 활발하게 이뤄지면 결과적으로는 김해를 비롯한 경남권 경제에 이바지를 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가령, 경주의 경우 신라시대의 생활상과 문화를 가늠할 수 있는 유적과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관광산업이 고도로 발전돼 지금까지도 관광지로써 기능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소국의 형태로 역사 속에서 사라진 고대국가이긴 하나, 가야가 고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역사학자들 사이에는 이견이 없다. 김용탁 강산문화연구원장 역시 이 의견에 크게 동의했다. 이유는 ‘최대의 해상국가로 철을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했다’는 점과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한 왜곡되고 그릇된 역사지식이 아직 상존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김 원장에 따르면 가야는 해상세력과 대륙세력의 조화가 그 어느 나라보다 컸던 곳이다. 특히 수로왕의 경우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을 왕비로 맞아들임으로써 당시 금관가야가 해상국가로 명성을 크게 떨친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토착세력인 9간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포섭해 더 강력한 국가건설을 꿈꿨다.

 금관가야가 대가야 등 나머지 5개의 가야국 사이에서 맹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철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것으로 경제적 부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당시 철은 고대국가들 사이에서 ‘철정(鐵鋌)’으로 만들어져 화폐로 사용될 만큼 귀하고 값진 것이었다.

 지난 1970년을 전후로 일본과 한국 양국은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일 뿐이라 의견을 한데 모았다. 사학자들과의 합의를 통해 이미 끝낸 문제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실과 사과를 원하는 우리나라의 입장과 지배를 했다는 역사는 사실이 아님을 왜곡하는 일본 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탓에 다시금 임나일본부설이 수면 위로 은근히 떠오르게 됐다. 특히 지난 1997년 출시된 컴퓨터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가 일본 ‘고사기’ 속 기록된 임나일본부설의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학자들간 폐기하기로 약속했던 허구의 역사가 들춰져 버리고 말았다. 이 역시 역사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니만큼 허구의 역사라는 사실을 세계인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임나일본부설이 허구라는 결정적인 이유는 김해 양동리와 대성동에서 발견된 고분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과 유적들이 발견되면서 일단락 지어졌다. 임나일본부설이 성립되려면 고대 일본이 금관가야보다 더 나은 문명과 문화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이 돼야 하지만, 일본에서는 현재까지도 김해에서 출토된 가야의 유물보다 더 나은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학계의 논의와 별도로 형성된 민족감정이 앞서면 반드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왜곡이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임나일본부설을 통해 알 수 있다. 강산문화연구원은 오로지 문화재 발굴과 조사ㆍ연구만을 토대로 민족의 자존감과 국가의 역사를 조명해 새로운 사관을 불어 넣어주는데 중요한 구심점이 되고 있다.
 

▲ 김용탁 강산문화연구원장은 “금관가야는 신라에 뒤지지 않는 발전된 문화와 해상국가로 호령한 중요한 국가다”며 “문화재 발굴 및 연구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정부 차원에서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탁 강산문화연구원장 인터뷰 국가가 발굴ㆍ조사 적극 장려해야
가야 역사적 매력 무궁무진 변한 역사 깊이 연구할 것 건설사와 ‘불편’ 관계 묘해

 -사학(史學)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뭔가?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고, 대학생 시절 동의대 박물관에서 문화재 발굴조사를 학생 자격으로 처음 하게 됐다. 그때부터 고고학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특히 가야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김해는 금관가야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가 존재했던 곳이라 이곳에서 연구원을 설립하게 된 것이고, 금관가야는 한국 고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만큼 가야를 깊이 연구하고 있다.”

 -고고학자로서 느끼는 가야의 역사적 매력은 무언가?

 “고고학적 관점에서는 3세기부터 삼한(마한, 진한, 변한)시대라고 보고 있고, 4세기부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특히 4세기 때 비로소 가야와 신라의 문화적인 성격이 극명하게 나뉘게 된다. 가야의 모태가 되는 변한을 먼저 살펴보자면 역사적으로 기록이 돼 있을 정도로 철 생산에 많았고, 그것을 다른 나라에 수출을 하면서 대외적으로 활발하게 활약을 했던 국가다. 금관가야는 변한의 영향을 받아 해상국가로서 여섯 개의 가야 소국들 중 맹주 역할을 했던 만큼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재단에서 발굴 주도해서 진행한 업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해 퇴래리 유적이다. 이곳에서 당시 금관가야 시기에 대장장이들이 쓰던 철집개와 정, 망치 등 철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대량 발굴이 됐는데, 이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것들은 전부 5세기 당시 만들어졌던 유물들로, 당시 금관가야가 철을 생산하고 타국에 수출을 했다는 기록이 확실하게 증명된 것이다. 철이 발견됐으니 당연히 철로 만든 세공품들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화재 발굴 등 연구나 학술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부가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 현재 정부에서는 이러한 기반을 잘 충족시켜주는 편인가?

 “현재 우리 연구원은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다. 물론 문화재청의 소관이라 관리감독을 받는 것이 전부다. 가령 특정 건설사에서 건물을 짓기 위해 터파기 등을 할 경우 문화재적인 가치가 높은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문화재법은 이러한 것들이 발견되면 전부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건설사나 땅주인에게 비용을 전가시키고 있는 형태다. 그렇다 보니 연구원과 건설사가 서로가 불편해지는 경향이 없진 않다. 또한 문화재를 연구하는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단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런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시피 하니, 앞으로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문화재 발굴 조사나 연구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장려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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