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5:26 (목)
복수자의 기억법
복수자의 기억법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17.10.19 2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수자의 기억법은 단순하고 상대를 오직 죽이는데 매몰한다.
복수자가 칼날을 정의의 이름으로 들지만 칼끝에 한이 서려 있기 마련이다.
▲ 류한열 편집국장

 지금 정치판에서는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을 두고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여당은 전 정권의 적폐를 내세워 새 정치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야당은 과거를 들춰 애꿎은 사람 잡는 정치 보복이라고 날을 세운다. 적폐와 보복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어 칼을 쥔 쪽이나 방패를 든 쪽이나 할 말이 많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명박 정부를 사찰 공화국, 댓글 공화국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이 전 대통령까지 위협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정치공세를 벌인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별한 사안을 두고 칼을 대는 것 같아도 한풀이식 정치보복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청산과 보복이라는 큰 틀에서 벌이는 프레임 싸움을 하다 보면 논쟁하는 본질이 날아가고 이슈 선점에 집중한다. 양측은 프레임 싸움을 주도하기 위해 온갖 논리를 갖다 붙여 상대를 꺾으려 한다. 프레임 싸움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모호하기 때문에 목소리가 크면 정의로운 쪽으로 비친다. 그래서 사생결단식 싸움이 벌어진다. 프레임 싸움은 한쪽이 다른 쪽을 몰아서 절벽에 떨어뜨리면 되기 때문에 힘이 세면 최고다. 이슈에 끌려다니면 자칫 상대의 덫에 빠질 수 있고 범죄를 벌하려고 하지만 자신이 켕기는 구석이 있다. 이런 싸움을 여야가 지금 핏대를 올리리면서 하고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이 소설에 이어 영화로 나와 많은 사람이 긴장과 반전을 즐기고 있다. 영화에서 과거 연쇄 살인자였던 병수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간다. 살인의 도사가 접촉 사고로 태주를 만나게 된다. 선수끼리는 알아보는 법. 병수는 딸 은희를 지키기 위해 태주를 죽이려는 계획을 짠다. 병수는 딸을 지키기 위해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후반부에 여러 반전이 있다. 병수는 혼자 태주를 잡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과거의 습관이 되살아나 실제와 망상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살인자의 기억은 끝에는 자신마저도 의심하게 만든다. 기억을 지키려 하면 할수록 기억은 더 달아난다.

 현재 정치판을 복수 프레임의 시각으로만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여당에서 언급하는 여러 사안은 검찰에서 수사를 해야 한다. 범죄 행위를 그대로 묻으면 다음 범죄에서도 관용을 베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이 칼자루를 쥐었다고 닥치는 대로 휘두르면 다른 여러 사람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안별로 신중하게 ‘족집게 적폐 청산’을 해야 한다. 적폐청산위원회에는 진보ㆍ보수 인물이 두루 있어야 하는데 한쪽으로 거의 기울어 있다. 아무리 좋은 소리를 질러대도 한쪽에 치우친 프레임을 가지고 있으면 공평하려고 해도 공평할 수가 없다.

 복수자의 기억법은 단순하면서 상대를 오직 죽이는데 매몰되기 십상이다. 복수자가 칼날을 정의의 이름으로 들지만 칼끝에 한이 서려 있기 마련이다. 연쇄살인범의 기억이 딸을 살리기 위해 태주를 죽이는 데 집중하듯이 복수자의 칼은 상대를 정확히 겨룬다. 거기에 자비나 망설임이 없다. 복수자는 거대한 프레임 싸움에서 자신을 정의의 기사로만 여긴다. 병수가 딸이 이미 죽고 없었는데도 요양보호사를 딸로 여겼듯이 나중에 희한한 반전이 기다릴 수도 있다. 죽이려던 태주가 형사라는 결말에서 한 번 더 반전이 뇌리를 때린다.

 ‘살인자의 기억법’이 9월 최고 흥행작으로 떴다. 이달에도 여전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이 오락가락하면서 갈피를 못 잡는 정국에 정치인들 자신들의 기억법을 떠올려야 한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병수의 기억법을 기억해도 약이 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