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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만든 가장 강렬한 예술 ‘동화자기’ 명맥 잇다
불꽃이 만든 가장 강렬한 예술 ‘동화자기’ 명맥 잇다
  • 황현주 기자
  • 승인 2017.10.22 1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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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도자기공예 최고장인 운당도예 김용득
▲ 끊어진 동화자기의 명맥을 이은 운당 김용득 선생의 뒤를 이어 2대 장인 운곡 김진옥 선생이 부친이신 운당 선생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김진옥 선생은 운당 선생의 아들이기 이전에 든든한 제자다.

 김해시 진례면에 위치한 운당도예의 동화자기(銅畵磁器)는 가히 불꽃이 만든 가장 강렬한 예술작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모든 도자기가 불의 힘에서 태어나는 것이지만, 특히 동화자기는 불길이 요변(窯變)을 그림처럼 그리고 완성하는 것으로, 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운당 김용득 선생이 만드는 동화자기는 흔히 진사(辰砂)자기라고 부르는 것으로, 수산화 탄산구리인 공작석(孔雀石)을 분말로 회청(回靑)같은 유리안료(釉裏顔料)를 써서 만든 백자기이다. 이것을 흔히 진사(辰砂)라고 부르고 있는데, 고려시대 중엽부터 구리안료 등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실제로 역사문헌에도 기록이 돼 있는 동화자기는 만들어지는 과정이 까다롭다보니 당시 많은 사기장들이 도중에 손을 놓아버렸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 들어 활발하게 만들어지게 됐는데, 임진왜란 당시 많은 동화 사기장들이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명맥도 아예 끊어지게 됐고, 이것이 일본에서 되레 발달돼 버렸다. 일본에서 활약한 사기장들의 기술이 한 재일교포에 의해 김해 진례 지역에 역으로 들어와 호재를 맞기 시작했다. 방곡 서동규 선생에게 16세 때부터 도예가로써 사사받기 시작한 김용득 선생 역시 고려시대 당시 사용한 순수한 제유 사용법을 그대로 배우는 기회를 가지게 됐고, 선생은 ‘전통을 재현하겠다’는 결의로 오로지 동화자기에 대한 방법과 연구를 거듭하게 됐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바로 동화자기 명장이라는 결실로 다가온 것이다.

▲ 김해시 진례면에 위치한 운당도예 전시실.

 현재 김용득 선생은 무형문화재 등록 과정 중에 있으며, 지난 2015년 경남도 최고장인으로 선정됐다. 유약제조 및 가마를 재는 방법까지 총 6건의 특허를 취득했고, 나머지 4건의 기술특허는 특허청으로부터 심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동화자기를 만드는 기초적인 과정은 여느 도자기를 만들 때와 똑같다. 그러나 재벌과정에 들어가게 되면서부터 여느 도자기와 같지 않게 된다. 초기 과정은 도예가의 손을 타야 하지만, 재벌과정에서는 불꽃의 유려함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게 된다. 불꽃의 방향과 온도 등에 따라 도자기들이 각기 다른 매력과 개성을 가지고 세상에 나기 때문에 특히 동화자기는 재벌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동화자기는 전통잿물에 구리 등 8가지 물질이 배합된다. 초벌이 끝난 후 재벌로 들어갈 때 비로소 동화자기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데 가장 적당한 온도는 1천300℃~1천400℃가량이며, 유약에는 엄지손가락 반 마디 정도의 구리와 장석, 규석 등이 함유된다. 구리 등은 볼밀(ball mill)이라 부르는 도구에서 분쇄하고, 이것이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되면 동화유약이 되는 것이다. 동화유약은 김용득 선생이 특허청에 정식으로 특허를 낸 유약제조 방법으로, 이것을 통해 그가 얼마나 동화자기에 애착이 많은지,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도자기 제조법에 대한 깊은 혜안을 알 수 있다.

▲ 동화요변 연꽃 5인 다기ㆍ동화요변 연꽃 찻상.

 김용득 선생은 현재까지도 전통 방식의 장작가마를 애용하고 있다. 많은 도예가들이 편리함을 앞세워 가스를 이용한 가스가마를 사용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자력(自力)으로 장작을 패고, 쌓아 두 달에 한 번 가마를 여는 작업을 한 번도 게을리 한 적 없다. 그 역시 가스가마의 편리함을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장작이 만들어내는 불길이 가스에서 나오는 불길과 질적으로 비견의 대상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오늘 날 명장 반열에 오른 것이 이상하지 않다. 동화자기는 가스가마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작품성이 장작가마에서 만들어진다고 김용득 선생은 믿고 있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가마 속 나무를 재는 방법과 온도를 맞추는 등 과정 등을 실패를 거듭한 끝에 완성했기 때문이다.

▲ 동화요변 장병.

 “장작가마를 뗀다고 해도 흡족하게 나오는 작품은 한두 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힘든 점이 더 많지만, 내가 만드는 동화자기는 가스가마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작품성이 만들어진다. 비단 유약뿐만이 아닌, 가마 속 나무를 재는 방법도 40여 년 동안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로 탄생된 것이다”는 말로 불꽃이 강렬하게 일렁이는 가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끊어진 동화자기의 명맥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어쩌면 하늘의 뜻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선생을 하곤 한다. 그것이 다행스러운 점이지만 동시에 부담으로 남아 있다. 자신이 죽고 나서도 동화자기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게 살아 숨 쉬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선생이 현재 짊어지고 있는 큰 숙제 중 하나다.

▲ 동화요변 달 항아리.

 다행스럽게도 김용득 선생이 운영하고 있는 운당도예는 현재 선생의 후학으로 운곡 김진옥 선생이 늘 함께하고 있다. 김진옥 선생은 운당 선생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어 동화자기를 연구하고 만드는데 평생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

 김용득 선생은 “동화자기를 완성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불이다. 불자락이 어떻게 도자기를 변화시킬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가마 안에서는 불이 사람의 손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동화자기의 매력이다”라고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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