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6:32 (금)
신고리 공론화위의 교훈
신고리 공론화위의 교훈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 승인 2017.10.22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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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이번 신고리 원전 공개 재개 결정은 집단 이성의 승리라고 할 만하다. 입장차에 따라 공론화위의 권고를 못마땅해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노골적인 반발이 없는 것을 보면 출범과 동시에 제기됐던 많은 논란을 잠재울 만큼 성공적인 과정을 거쳤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민감한 문제를 파열음을 최소화하면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민감한 이슈에 맞부딪힐 때마다 격렬한 반목과 대립을 계속했고 그 여파는 길게는 1년 넘게 지속됐다. 그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과 상대편에 대한 역 불신, 적개감이 확대 재생산됐다. 세월호, 천안함, 광우병 사태 등은 지금도 그 후유증이 현재 진행형이다.

 만일 그때도 공론화위의 활동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모든 문제를 공론화위와 같은 집단토의에 부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감성이 아닌 객관적 자료 위에서 숙의를 통해 인식의 오류를 바로잡고 보다 객관적 시각에서 현상을 볼 토대를 마련해 줬다면 그토록 심한 갈등과 불신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근거 없는 의혹이 제기되고 그 의혹이 확대 재생산되는 사례를 우리는 수도 없이 봐 왔다. 온갖 음모설이 나돌고 정부는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심이 광풍처럼 불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그 의심은 합리적 의심이라는 적지 않은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 과정에는 지식인들의 침묵 또는 이념 편향적 접근도 한몫했다. 학자적 양심은 저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세태에 부화뇌동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영화 판도라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나돌아도 진리를 탐구한다는 학자들은 말을 아꼈다.

 하기야 정부를 비판하면 개념 있는 지식인이고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면 SNS에서 공개 참수되는 세태에 용기 있게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개개인의 용기와 양심에 맡기기에는 환경이 매우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는 전문가, 학자들의 의견이 공식적 경로를 통해 표출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공식적 경로를 통한 학자들의 의견 개진은 비공식적으로 제기되는 의견이 가질 수 있는 함정과 곡학아세를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발언이 가지는 무게감이 크고 기록에 남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의심보다는 객관적 시선에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숙의를 거듭할수록 여론조사와는 크게 다른 결론이 도출됐다는 공론화위의 발표는 숙의를 통한 공론화 과정이 얼마나 유효한가를 보여준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신고리 원전과 같은 수많은 논란거리를 만날 것이다. 정치공세, 근거 없는 불안과 공포, SNS를 휩쓰는 무책임한 의혹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보와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 대중은 확산되는 이런 불안과 공포, 의혹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공론화 과정은 정치에서 한 발짝 물러나 진실에 한 발짝 더 접근할 기회를 보장한다는 중요한 경험을 우리는 목격했다. 집단 이성의 위대함을 재확인했다.

 적어도 국론이 분열되고 나라의 미래가 달린 일에는 공론화 과정이 널리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정권이 바뀌고 나면 예외 없이 나타나는 과거 흔적 지우기 악습을 없애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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