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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줄행랑
삼십육계 줄행랑
  • 이광수
  • 승인 2017.10.23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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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중국의 병법서인 무경십서(武經十書) 중 삼십육계(三十六計)는 우리 속담에 ‘삼십육계 줄행랑’으로 흔히 인용되고 있다. 강적을 만나 불리할 땐 일단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다. 삼십육계의 저자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사서의 기록을 추적해 보면 단공제가 삼십육계의 원형을 만들어 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무경십서: 신동준) 삼십육계는 다른 병서처럼 병도를 깊이 논하지 않고 오직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의 계책을 수록해 놓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병서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삼십육계와 관련한 해설서가 많이 출간되는 것을 보면 21세기의 트렌드에 응용하기 좋은 전략전술서로 증명이 된 셈이다.

 삼십육계는 크게 승전계, 적전계, 공전계, 혼전계, 병전계, 패전계의 6계에 각 계마다 6가지 계책이 기술돼 있어 모두 36계가 된다. 삼십육계는 주역의 음효(陰爻)인 숫자 6을 여섯 번 곱해서 36가지 계책이 나왔다. 이는 음모기책(陰謨奇策)을 구사해서 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구사하는 계책과 모의를 뜻한다. 역대 병서 중 주역의 괘사(卦辭)를 음모기책으로 표현한 것은 삼십육계뿐이다. 삼십육계는 주역 64괘의 괘사를 언급해 병법을 논하고 있기 때문에 주역의 괘상과 괘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총론에 이어 각론인 36계의 내용을 응용함에 있어 선택지가 다양하기 때문에 현재 중국에서는 삼십육계를 손자병법에 버금가는 병서로 높이 재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병서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신의나 명분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기질과 실리를 추구하는 중국인의 기질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삼십육계는 음양의 대립을 통한 변증법적 지양(止揚)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1계인 ‘만천과해(瞞天過海)’ 계책이 태양(太陽)과 태음(太陰)의 대립을 통한 회통(會通)을, 제2계인 ‘위위구조(圍魏救趙)’가 적양(敵陽)과 적음(敵陰)의 대립을 통한 해우(解憂)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역대 병서 중 주역의 음양론을 끌어들여 승리의 방략(方略)을 절묘하게 풀어낸 것은 삼십육계밖에 없다. 따라서 일각에서 삼십육계를 단순한 술책이나 부정적 의미의 음모로 폄하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어찌 주역의 심오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삼십육계의 오묘한 계책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삼십육계의 계책 중 지면 관계로 몇 가지 계책만 약술한다. 승전계의 제1계인 ‘만천과해(瞞天過海)’의 ‘음재양지내(陰在陽之內)’는 은밀히 추진하는 음모(陰謨)는 드러내 놓고 추진하는 양모(陽謨)속에 있다는 뜻이다. 주역의 ‘양 속에 음이 있고 음속에 양이 있다’는 논리와 같다. 즉 겉과 속이 같은 것이 태양과 태음이라면, 겉과 속이 정반대인 것이 소음과 소양에 해당된다. 서양 속담에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처럼 겉으로 강한 모습을 보일수록 속으로는 유약한 심성을 지닌 내유외강을 말한다. 정반대로 겉으로는 유약하지만 속으로는 강한 심지를 지닌 외유내강을 뜻한다. 이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과의 인간관계나 사업상 상대방의 의중이나 심리를 파악하는데 유용한 판단 기준이 된다. 승전계의 제4계인 ‘이일대로(以逸待勞)’는 쉬면서 적을 지치게 만들라는 계책으로 손자병법의 ‘군쟁과 허실’에 나오는 방책이다. 때를 기다려 적이 지쳐있을 때 허점을 치라는 전략이다. 승전계의 제6계인 ‘성동격서(聲東擊西)’는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계책이다. 적을 헷갈리게 만든 뒤 그 허를 찌르는 전술이다. 이는 한비자, 설림상에서 나왔다. 그 밖에 작전계 ‘무중생유(無中生有)’의 기만 술책, ‘소리장도(笑裏藏刀)’의 겉으로 웃으면서 칼을 숨기라는 계책, 공전계의 ‘욕금고종(欲擒故縱)’으로 대어를 낚으려면 짐짓 풀어 주라는 계책, 혼전계의 ‘부저추신(釜底抽薪)’으로 문제의 근원부터 해결하라는 계책, 병전계의 ‘상옥추제(上屋抽梯)’로 지붕 위로 올려놓은 뒤 사다리를 치워서 적을 함정에 빠뜨리게 하라는 계책이 있다. 또한 패전계의 미인계로 미색을 이용해 적을 유인하라는 계책으로 현재도 많이 활용하는 계책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의 미모에 혹하지 않는 남자가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패전계의 ‘주위상(走爲上)’으로 상황이 불리할 땐 일단 달아났다가 후일을 도모하라는 줄행랑 계책이 있다.

 삼십육계는 읽으면 읽을수록 삼국지연의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조직의 관리자나 사업경영자들은 물론 인간관계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관심 깊게 읽고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지침서가 무경십서의 삼십육계이다. 책 읽기 좋은 가을을 맞아 고전의 세계에 한번 풍덩 빠져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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