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5:48 (토)
넛지 효과에 주목하라
넛지 효과에 주목하라
  • 정영애
  • 승인 2017.10.24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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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애 금성주강(주) 대표이사

 넛지(nudge)는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으로 강요에 의하지 않고 유연하게 개입함으로써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 말은 2017년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이며 시카고 부스경영대학원 교수인 리처드 탈러(독일계 미국인으로 세일러라고도 한다)와 법률가이며 하버드 로스쿨 팰릭스 플랭크 퍼터 교수인 선스타인의 공동저서인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2008)’에서 한 말이다. 앞서 넛지의 정의에서 말했듯이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대표상품으로 만들었다. 넛지는 좌도 우도 아닌 중도적 선택지를 의미한다. 어떤 선택을 주도하는 선택설계자는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넛지 효과는 요즘 생긴 현상이 아니다. 이런 사례는 일상적으로 계속 발생했는데 두 교수가 체계화시킨 경영이론이다.

 내가 평소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릴 때마다 느끼는 것은 각종 상품 코너가 너무 획일적으로 구획된 공간에 진열돼 단절적이라는 점이다. 1층부터 몇 층까지 층마다 다른 상품이 진열돼 있다. 쇼핑을 위해 한 바퀴 돌고 나면 피곤하다. 물론 고객들의 이용 편의를 위해서라지만 이제 백화점과 마트는 소비생활의 중요한 공간이 됐다. 단순히 상품만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넛지 개념의 도입이 절실하다.

 층마다 잘 보이는 공간에 작은 쉼터 겸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꼭 쇼핑목적이 아니라도 만남의 장소로 이런 공간을 찾을 때 진열된 상품을 보게 될 것이다. 견물생심이라고 이런 심리를 이용해 소비자의 옆구리를 살짝 찔러 구매 욕구를 일으키게 하는 넛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충동구매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마케팅 세어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단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전략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다원화 된 사회에서 온갖 요소와 상황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예전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 상품을 진열해놓고 손님을 기다리기만 하면 물건이 팔리는 시대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소프트한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넛지 전략과 전술이 먹혀드는 시대가 됐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에서는 시민청 입구에 ‘가야금 건강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비만을 예방하고 생활 속 걷기를 유도하기 위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은은한 가야금 연주 소리가 들린다. 또 계단을 이용하면 기업의 후원을 받아 한 사람당 10원의 기부가 이뤄지도록 했다. 건강 계단이 생기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이용객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건강도 챙기고, 불우이웃도 돕고, 전기료도 절감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에게 ‘건강을 위해 계단을 이용해주셔요’ 하고 표어를 써 붙이거나 권고한다고 사용을 자제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감성을 옆구리 찌르듯 슬쩍 건드려 줌으로써 자유주의적 개입을 선택하게 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연금저축률을 높이기 위해 넛지 효과를 사용했다.

 젊은 층의 퇴직연금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연금 가입 의사를 밝힌 뒤 가입하는 방식에서 자동가입 뒤 탈퇴 의사를 밝히는 방식으로 바꾸자 가입률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청년들의 연금가입에 대한 생각을 옆구리 찌르듯이 슬쩍 건드려 준 것이 효과를 거둔 것이다. 영국에서는 세금 독촉장에 ‘영국인의 90%가 세금을 냈다’는 문구를 추가했더니 체납세 징수율이 57%에서 86%로 올랐다고 한다. 이는 체납세를 납부하지 않으면 재산을 압류한다는 식의 강압적 문구보다 영국 국민으로서 납세의무를 다하는 것이 자존감을 살린다는 점을 옆구리 찌르듯 슬쩍 건드려 줌으로써 넛지 효과를 본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 제 분야에서 넛지 효과를 사용하는 전략은 비용을 적게 들이고도 신선한 아이디어 하나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발상의 전환과 경직된 사고의 혁신이 뒤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치밀한 마케팅 전략과 소비자 승부욕 자극, 정부 기관과 사회단체의 각종 정책 수립에 넛지 효과를 활용할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교통안전, 교통질서, 쓰레기 문제, 자원 절약과 환경보호, 국민건강관리, 매너, 행정, 범죄, 소통, 자기계발, 논문작성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넛지 이론의 창시자인 탈러와 선스타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하고 작은 요소라고 해도 사람들의 행동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아직도 우리 정부 기관과 지자체들이 내건 정책 슬로건이나 홍보 플랫카드는 노골적인 계몽과 훈계조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이제 넛지 효과에 주목할 때가 됐다. 국가정책입안자나 각급 기관단체에서는 차제에 넛지 효과의 선진사례에 대한 벤치마킹은 물론 관련 도서의 일독을 적극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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