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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회안전망
2017년 10월 25일 (수)
김혜란 hfree2821@naver.com
   
▲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TBN ㆍ창원교통방송 진행자

  긴 추석 연휴 이후 진저리쳐지는 사건들이 이어졌다. 국민을 대상으로 후원금을 모아 개인의 사악한 욕심에 쓰고 아내를 성매매시키고 게다가 딸 친구를 성폭행 후 살해한 어금니 아빠는 일일연속극 인기스타만큼 언론을 채운다. 십대인 손녀를 성폭행해서 아이 둘까지 낳게 한 의붓할아버지 사건은 시사프로그램 특집인 것처럼 다뤄진다.

 싫어하는 영상물 종류가 있다. 정신 나간 척하면서 사람 죽이고, 어린아이들과 여성을 상대로 성매매나 변태적 성폭력 등을 행사하는 내용이다. 수많은 폭력물 영화나 드라마 가운데서도 최악이다. 왜 범죄행위를 소재로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잔인한 폭력을 다시 보여주는지 이해 안 될 때가 많다. 영화나 드라마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해결책이 아니라 범죄기술만 빨리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사회안전망은 얼마나 안녕한가.

 아침마다 엘리베이터에서 교복 입은 여학생을 만나면 저 소녀는 안전한지 걱정된다. 십 년 째 산책길에 스치는 지적 장애를 가진듯한 청년은 착한 사람일지 무심코 의심이 든다. SNS 타임라인에 불우이웃돕기 스토리가 뜨면 저 단체는 믿을 수 있을지 날이 선다. 길 건너 빼곡하게 들어선 모텔과 룸 술집들은 밤마다 휘황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여성들도 드나든다.

 나만 안전하면 주변도 안전하리라 믿고 살지만, 이웃은 이미 안전하지 않고 곧 내 안전에도 검은 그림자가 닥칠지 모른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 예상보다 많지 않다. 가족은 갖가지 이유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간다. 명절이면 만나야 하는 가족은 이미 ‘그림자 가족’ 처지다. 이웃은 껍데기만 이웃이지 대부분 얼굴도 모른 채 수십 년을 살아간다. 친구는 대부분 너무 멀리 있다. 결국 위험할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사회안전망은 파괴된 지 오래다.

 사회안전망에서 CCTV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망이다. 관계망 중 최고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다. 무너진 관계망을 새롭게 만드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관계를 맺는 방법 중 최고는 관심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학생을 자세히 보니 눈이 부어있다. 이상한 아줌마 될 각오하고 울었냐고 물어본다. 산책길 지적 장애 청년에게는 자주 봤는데 인사하고 지내자며 말을 건넨다. SNS 타임라인에 불우이웃돕기 스토리에는 이 단체가 믿을만하냐고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아놓고 지켜본다. 모텔과 술집에서 밤늦게 나오는 어린 여성들과 마주치면 걱정어린 눈빛으로 잠시라도 쳐다봐주면 어떨까. 간절히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사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유라가 잠시 살았던 독일, 이상하게 여겨 일지까지 쓴 마을 할아버지 이야기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관심과 함께 관계를 맺는 방법은 배려다. 위층 아이들이 조금 쿵쾅거려도 잠들 때까지 기다려주고 참아준다. 과일 하나 챙겨 들러보고 육아 피로 걱정도 같이 해주면 서로 가까워지지 않을까. 동 입구에서 담배 피우는 동민, 공기는 좀 안 좋지만 얼마나 힘들면 저러겠나 못 본 척해 주기도 하자. 다음번에 또 마주치면 내친김에 힘드시냐고 인사 하자. 무시당할 각오만 하면 결과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한술밥에 배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 경제활동 하느라 그런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한다. 돈 벌어서 먹고 입고 집 사는 데만 쓰지 않는다. 친구 만나 술도 마시고 관계를 만든다. 친구 만나는 노력, 조금 덜어서 동네 이웃과도 관계를 만들면 된다. 동네 주민들이라고 같은 고민이 없겠는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지만 안전하게 살기 위해 관계를 만드는 일이니 누가 먼저라고 이기거나 지는 일이 아니다. 물론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 때 걸림돌이 되는 개인주의 성향이나 이기주의적 행태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관계 만들기 시도는 개개인이 해야 할 몫이다. 서로를 이기적이고 개인적이라고 여길 이웃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만나보면, 서로 마음을 주고받다 보면 상대방도 같은 생각임을 확인하고 관계는 급진전할 수 있다. 서로가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구축은 그 무엇보다 절실한 문제다.

 무너졌다고 한탄만 하고 있지 말고 다시 만들자. 쉽지 않은 것은 다 알고 있으니 결과를 미리 걱정하지는 말자. 어떤 아득하고 곤혹스러운 상황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면 된다. 그것이 무엇이 되든, 어금니 아빠나 의붓 할아버지 이야기를 계속 만나는 일보다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사회안전망을 위한 관계구축은 사회를 위한 ‘거룩한’ 일이기 전에 나, 개인을 위한 일이다. 또한 양보와 배려, 관심과 사랑을, 나 아닌 이웃에게 가질 수 있는 분위기만 만들어져도 그것 자체만으로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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