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2:08 (목)
미네르바의 부엉이
미네르바의 부엉이
  • 정창훈 부사장
  • 승인 2017.10.25 2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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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부사장

 가을의 새소리는 푸른 하늘과 투명한 공기를 뚫고 귓전에 풍성하게 부딪힌다. 내가 새라면 참새, 뻐꾸기, 꿩, 비둘기, 갈매기, 딱따구리, 지빠귀, 독수리, 부엉이 등의 새 중에서 단연 독수리를 최고로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부엉이도 괜찮은 새인 것 같다. 낮에는 조용히 쉬다가 황혼이 질 무렵에 날갯짓을 시작한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깜깜한 밤에 나무에 앉아 있다가 먹이를 잡는 시스템도 효율적이다.

 어린 시절 한겨울 어머니는 호롱불 밑에서 부엉이가 우는 깊은 밤까지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절벽이나 산속 아름드리나무 위에 있는 부엉이가 살고 있는 집을 찾으면 벼락부자가 된다.”, “부엉이는 밤에도 눈이 밝아 세상에 있는 금은보화를 자기 집에 물어다 놓는다.” 부엉이 소리가 자주 들린다는 부엉이 고갯길이나 부엉이바위도 왠지 긴장감이 들지만 부엉이 집을 꼭 찾아보고 싶어 친구들과 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부엉이는 대략 10여 종이다. 그중에서 수리부엉이는 부엉이 중에 몸집이 가장 크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돼 있기는 하다만 도심 주변에도 서식할 정도로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이 산다. 야행성에다가 조용히 비행하는 습성 때문에 우리가 잘 모를 뿐이다.

 수리부엉이는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선다. 높은 나무에 앉아서 커다란 눈과 귀를 부릅뜨고 주위의 조그만 움직임을 다 잡아낸다. 수리부엉이는 먼저 청각을 이용해 먹이를 탐지한다. 재미있게도 수리부엉이의 양쪽 귀는 짝짝이다. 이들의 귀는 대충 사람의 귀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 한쪽 귀의 귓구멍이 다른 쪽보다 더 크고, 더 높은 위치에 있다. 이런 수리부엉이의 귀는 아주 효과적이어서 쥐, 들쥐나 곤충이 내는 작은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부엉이’와 ‘올빼미’는 구별되지 않고 쓰여 왔는데, 이것이 들어간 단어에는 긍정적 이미지가 많다. ‘부엉이살림’은 조금씩 열심히 저축해 자기도 모르게 부쩍 커진 탄탄한 살림을 말한다. 부엉이가 사냥해 먹잇감을 하나하나 저장해둔 고목나무 속의 부엉이 둥지를 생각하면 된다.

 예로부터 우리 주변에는 화수분같이 아무리 퍼내도 계속 재물이 나오는 부엉이 저금통이 많았다고 한다. 부자가 되는 꿈을 꾸며 어려운 시절에서도 아끼고 절약하고 모아 작은 것부터 시작해 큰 부를 이루듯, 조선 시대의 거상 임상옥의 창고는 부엉이 굴이었으며 그는 박물 군자이기도 했다. 그의 부엉이 굴에는 천하의 기보, 명보, 명기 등 없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부엉이 굴’에는 없는 것이 없고 자기도 모르게 재물이 순식간에 불어난다는 속담이 있다. 임상옥의 창고가 그러했는데 그는 후에 큰 부를 이룬 뒤 후학을 위해 모두 사용했다.

 우리 속담에도 ‘부엉이가 새끼 세 마리를 낳으면 대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부엉이가 새끼 세 마리를 키우려면 밤마다 엄청난 수의 들쥐를 사냥해야 하므로 생겨난 말이다.

 부엉이가 방귀를 뀌면 아람이 벌어진다고도 했다. 옛날 배고픈 보릿고개를 보내면서 다른 마을보다 우리 마을에 부엉이가 먼저 와서 방귀를 뀌어 오곡의 결실이 열리길 빌었다. 부엉이 방구는 ‘복력목’으로 행운과 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소나무 가지에 둥글게 맺힌 나무 둥치인 복력목을 일부 지역에서는 밤에 소나무를 쳐다보면, 둥근 부분이 마치 부엉이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 ‘부엉이 동괴목’이라고도 한다.

 일본의 관광지에는 최근에 인기 있는 부엉이 옷이며 인형 장식품 등 여러 종류의 캐릭터용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유난히 많은 부엉이 캐릭터로 된 관광 상품을 파는 이유가 있었다. 새집으로 이사하는 사람들이나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부엉이장식품을 선물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고생하지 말고 잘 살라는 부엉이의 의미가 복을 빌고 부를 비는 상징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혜의 여신과 아테네를 상징하는 동물이 부엉이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헤겔은 저서 ‘법철학’의 서문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펴는 것처럼, 철학이나 지혜는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가 지나고 저녁이 돼서야 비로소 그 하루를 돌이켜보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진정 변화가 두렵다면 새로운 상황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거창한 변화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지만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독서나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새로운 도전이다. 어제와는 다른 관점 때문에 또 다른 세계가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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