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5:02 (목)
행복학 특강
행복학 특강
  • 정영애
  • 승인 2017.11.01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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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애 금성주강(주) 대표이사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는 하버드대학교의 명강의로 수년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의 강의는 한국에서도 가히 ‘샌델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지금도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정의에 목말라 했던 청춘들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전 세계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절절한 욕망의 충족을 누군가가 대신 말해줌으로써 대리만족감을 느낀다.

 최근 샌델의 ‘정의’에 못지않게 하버드 대학교의 탈벤 샤하르 교수의 ‘긍정심리학’(일명 행복학) 강의를 책으로 펴낸 ‘해피어(happier: 행복한 사람)’가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돼 행복학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경험으로 터득한 행복학 강의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행복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적시하며 ‘진정한 행복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가장 자랑할 만한 사회 경제적 위치에서 남이 부러워할 만한 성과를 올렸지만, 지난 30여 년간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뭔가 부족한 듯 채워지지 않은 공허감을 항상 느끼며 살아간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로 볼 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막상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일과 인간관계, 가정사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에 억눌려 숨죽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괜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과 소소한 일상에 대한 비관주의에 사로잡혀 살면서 한편으로는 행복을 갈망한다. 이는 생각과 행동의 괴리현상으로 행복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행복을 찾거나 추구하지 않고 자기모순에 빠져 사는 삶을 반복한다. 일종의 비관주의적 매너리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의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장샤오헝은 샤하르 교수의 행복학 강의를 바탕으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이렇게 풀어나간다. 그는 행복해지기 마지막 15강에서 ‘진정한 행복은 고난과 좌절을 이겨낸 것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행복을 찾고 발굴하라. 그편이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행복은 적극적으로 찾고 갈구하는 자의 것이니 두드리면 그 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내 가까이 있는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소소한 재미나 즐거움을 행복이라는 의미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모습, 자식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내 짝지가 내 곁을 지키며 떠나지 않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여유를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공연히 비관주의적인 생각을 하면 삶 자체가 시들해진다. 사람과의 관계마저 스스로 끊고 고독의 성에 갇혀서 행복이라는 개념조차 잊어버린 채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한다.

 숨 막히듯 치열한 삶 속에서 쌓인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려는 욕망을 가져야 한다. ‘그거하모 뭐하노, 그거하모 돈 생기냐, 행복 해지냐’하는 허무감에 빠져 행복해지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려는 의지의 싹을 부정적인 생각으로 싹둑 잘라 버리기 일쑤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실수를 거듭한다.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완벽한 세상이 열린다. 부정의 심리는 긍정의 심리가 발동하면 맥을 못 춘다. 현대인은 물질적 풍요 속에 살면서도 상대적 빈곤감으로 배고파한다. 온갖 화려한 신상품으로 넘쳐나는 백화점의 쇼윈도를 아이쇼핑하면서 얄팍한 내 지갑을 원망하며 불행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빛나고 화려한 물건이 없어도 그런대로 불편 없이 살 수 있는데도 남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진다.

 고대 로마의 격언에 ‘재물은 소금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목마르다’고 했다. 자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빈곤하다는 뜻이다. 부유함은 결코 돈으로 가늠할 수가 없다. 가난함도 부유함도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 참으로 쉽게 들리는 말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데서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

 우리 국민성의 특징인 ‘빨리빨리 문화’는 예전부터 그랬던 게 아니다. 근대화 이후 열강의 침탈과 지배층의 수탈로 헐벗고 굶주렸던 민초들의 삶에서 생긴 조급증이다. 크게 잘 살지는 못해도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거두는 세상이 됐다. 비록 빈부격차(자본주의의 모순)는 있을지라도 평균적인 삶의 질은 향상됐다. 이제 한 템포 느린 걸음으로 삶의 여유를 찾아야 할 때가 됐다. 무조건 바쁘게 사는 사람은 과정의 즐거움보다 결과에만 집착한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 더 멀리 가기 위해 정신도 육체도 휴식을 주어 내 영혼이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느리게 더 느리게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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