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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만에 접한 두보의 시
35년 만에 접한 두보의 시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 승인 2017.11.05 2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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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얼마 전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중국 두보의 시가 나왔다. 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배운 두보의 시였다. 아는 시가 나와 반갑기는 했지만 씁쓸했다. 35년이나 지나야 겨우 한번 대면할 한시를 배워야만 했던 나 자신과 그때의 교육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졸업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지만 두보의 시는 따지고 보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한시를 왜 배우냐 하는 불만은 꽉 차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의문은 지금의 교육에서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목격했다.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에 나온 서양 중 근대 철학을 보면 기가 막힌다. 마키아벨리, 몽테뉴, 사르트르까지 줄줄이 나온다. 물론 모르는 것보다 알면 더 좋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한 고등학생들이 그들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당연히 암기도 매우 어렵다. 겨우 암기해봐야 얼마 못 가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이름 정도다.

 내가 아는 한 과학교사는 수능시험은 자신도 배정된 시간 안에 풀 자신이 없다고 한다. 교과서의 내용이 어려워 그런 것이 아니라 시험문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유전자와 관련된 문제의 경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해 풀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가 많다고 한다. 곳곳에 함정이 있는 것은 덤이다. 연초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함정 투성이인 수능시험을 두고 혀를 내두른 바 있다. 2017학년도 수능 국어 시험을 풀었더니 80분 동안 45문항 중 32문항을 풀어 21문항을 맞혔다고 한다. 하긴 필자도 고등학교 때 국어가 왜 이다지도 어려운지 머리를 싸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필자의 의견을 묻는다면 국어교육은 자신의 생각을 100%에 가깝게 표현하고 남을 글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 돼야 한다. 지금의 국어교육은 필자의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토록 굳이 배워도 되지 않을 어려운 것들을 가르치고 문제를 배배 꼬는 이유는 간단하다. 변별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대학 총장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정해진 시간 안에 풀려면 문제 푸는 기계가 돼야 한다. 사교육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다. 세상에 나가 아무짝에도 쓰여지지 않는 것을 배우느라 우리의 아이들이 지옥 같은 고등학교 3년을 보낸다. 단지 성적의 정상분포를 위해 배울 이유보다는 배우지 않을 이유가 훨씬 더 큰 것을 기를 쓰고 배워야 하는 현실을 고치지 않고는 입시지옥을 없앨 수도, 생각하는 교육이 설 자리도, 전인교육도 없다.

 그런데 교육개혁을 논의하는 현장에서는 이런 소리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이념적 접근 경향이 강하다. 물론 과도한 경쟁풍토, 학벌을 중시하는 능력 위주의 사회는 고칠 필요가 있다. 부익부 빈익빈에 따른 교육의 질적 차이에 대한 국가의 지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수능을 개혁하지 않고는 교육개혁은 없다. 국가의 지원은 그다음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교육개혁정책을 들고나온다. 지금의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니 개혁안을 내놓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느 정권도 교육개혁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교육 수요자와 공급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데 있다고 본다. 교육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학생과 교사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육개혁의 방향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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