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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농악 ②
김해농악 ②
  • 허모영
  • 승인 2017.11.13 2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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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모영 수필가ㆍ문화해설사

 1970년 초 우리 마을의 풍물놀이는 인근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동네 분들은 부산ㆍ진해까지 초청받아 정월대보름 건립을 했다. 평소에는 신명을 내지 않고 양반의 체면을 중시하던 우리 아버지도 그날만은 사대부 역할을 맡아 원정풍물패를 따라가셨다. 그때 번 돈으로 신천초등학교 사택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 집 다락방의 악기들도 신명이 났을 터이다.

 언제부터인가 다락방의 악기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졌는지 다락 한구석은 텅 비어 있었다. 새마을 운동으로 풍물놀이를 금했고 미신이라고 대보름 행사도 못하게 하면서 대보름날 마을입구에 세워지던 금줄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마을 어른들도 나이가 들어 풍물놀이를 할 수조차 없어졌다. 대보름 풍물놀이와 건립은 우리 마을의 큰 축제였는데 지금은 기억하는 분이 몇 분 남지 않았다.

 우리 집도 옛날 한옥이 불편하다고 집을 싹 뜯어 불태우고 양옥집으로 바꿔버렸다. 집 뒤 대밭의 돌감나무도 단감나무에 밀려 베어버렸다. 감나무뿌리로 탁자를 만든다는 사람들이 와서 뿌리마저 파 가는 바람에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겨우내 즐겨먹던 감홍시의 달콤한 기쁨도 사라져버렸다. 대청마루에 누워 뒷물리마루인 툇마루의 문을 열면 살랑살랑 볼을 스치던 대밭 돌감나무가 전해주는 시원함도 느낄 수 없다.

 학교의 사택도 다시 양옥으로 고쳐지었는데 안타까운 것은 최근 학생이 적어 폐교가 되고 말았다.

 새마을 운동으로 서서히 우리들 곁을 떠난 전통 민속들이 곳곳에서 원형을 복원하고 있다. 대부분 마을마다 농악대가 있어서 각 지역의 전통농악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옛날 어른들이 하루 종일 놀았던 그 능청능청함에다 빠름을 더해가던 여유로운 가락은 사물놀이의 빠른 가락들로 바뀌어가고 있다. 인기가 없고 좀 덜 세련되지만 마을어른들이 신명으로 놀았던 그 가락들은 소중하게 보존돼 가야한다고 본다.

 이번 축제기간 제39회 경남민속예술축제가 개최돼 김해농악이 우수상을 받았다. 축제가 단순히 시민들이 즐기고 보는 것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축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하게 돼 의미가 크다. 점점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놀이들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제공되는 축제이면 한다. 우수상을 받은 김해농악을 지켜보며 우리 마을 농악기가 되살아난 듯 환한 기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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