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5:37 (금)
공무원의 영혼, 지켜주는 것이 우선이다
공무원의 영혼, 지켜주는 것이 우선이다
  • 박재근 대기자ㆍ칼럼니스트
  • 승인 2017.11.19 2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재근 대기자ㆍ칼럼니스트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같은 상황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접근하는 남녀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비해 ‘다름’을 인식케 했다. 이해하고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도 갖게 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을 서로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같은 시선을 가질 수 없다는 한계도 알려줬다.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한계가 있듯, 공무원의 영혼에 대해서도 시각에 따라 확실한 한계가 있다.

 정치적 성향을 달리할 경우 정권 또는 단체장 교체 후 전 정권이나 전 단체장의 공과(功過)와 더불어 재단되는 게 공무원이지만, 공무원은 새로운 정권과 단체장의 정책을 또다시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각을 달리한 주장이 시공을 초월, 되풀이되는 ‘영혼이 있다, 영혼이 없다’는 논란은 공무원 조직은 물론, 우리 사회에 불신만 안겨 줄 뿐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전문성을 강조해 ‘영혼이 없다’고 한 것인데 자리보전을 위해 정권 따라 소신 파는 것을 밥 먹듯 하는 공무원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니 씁쓸하다. 영혼을 주문하려면 공무원이 소신을 펼 수 있는 인사 등 시스템과 분위기 조성이 먼저다. 따라서 공무원의 영혼을 요구하기 전에 시스템과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요구부터 해야 한다. 그러하지 않고 영혼만 요구하는 것은 공허하다. 그게 아니라면 공무원들에게 대통령과 도지사, 시장ㆍ군수의 영혼으로 바꾸라는 주문과 다를 바 없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봉공(奉公) 편에서 ‘윗사람의 명령이 공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굽히지 말고 확연하게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그 당시는 물론,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세월의 간극에 따라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시대정신도 변한다.

 왕조시대와는 달리,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은 물론, 도지사 등 단체장의 철학에 따른 국정, 도정운영에 대해 공무원의 영혼을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경남도는 물론, 우리 사회의 공무원은 엘리트 집단이다. 위민봉사가 곧 ‘공무원의 영혼’인데 각을 달리한 개인이나 단체가 영혼을 거론하며 자질문제로 연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공무원에게 더한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생각 또는 이익에 부합하도록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공무원은 나랏일의 수행은 물론, 도정운영과 시ㆍ군정은 새로 선출된 권력의 철학에 맞춰야 하는 게 공무원이다.

 국정철학에 기초해 도청은 도지사의 철학을 시ㆍ군도 단체장의 철학에 맞춰야 한다. 이를 실행하는 공무원에 대해 영혼이 ‘있다’, ‘없다’를 재단하려 해서는 안 된다. 선출된 권력에 의해 정책과 방법이 다르고, 혜택을 보는 대상이 달라지더라도 민(民)을 위한 일이기에 실행에 옳기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 된다, 공직자는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다”고도 했다. 복지부동하며 눈치나 보지 말고 소신을 갖고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뜻일 것이다. 백번 옳은 말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 15일 인사혁선처가 입법 예고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주목할 만하다. 공무원이 위법지시 거부권을 행사해 ‘영혼’을 교체하지 않고 지켜줘야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키 위한 것이다. 국가공무원법에 이런 내용이 반영되면, 곧 지방공무원들에게도 같은 조항이 적용될 것이다. 내용은 부당한 인사 조치는 소청심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고, 위법, 부당한 건에 대한 내부 고발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는 근거 마련 등이다.

 지난 권력의 국정농단과 국정원 댓글 조작 등은 권력자의 위법한 지시를 공직자들이 동조해 벌어진 일이다. 개정안이 규정한 위법 지시 거부권은 공무원의 소신과 양심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동시에 ‘도지사가 시장ㆍ군수가 시키는데 어떻게 안 하느냐’는 변명 뒤에 숨어 승진 등 각종 이익을 챙겨 온 일부 공무원의 보신주의를 막을 수 있는 이중 방패다.

 물론 법 개정만으로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오명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위법 여부를 누가, 어떻게 가릴 것인지의 모호함 등은 새겨들어야 한다. 명백한 위법 사안과는 달리, 경계선이 흐릿할 경우 정책실행이 늦춰지거나 업무가 위축될 우려도 없지 않다.

 엘리트 집단이라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부침(浮沈)을 겪는 공무원들. 그들이 정치적 외풍(外風)에서 벗어나 소명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중요한 건 위법지시를 거부하는 것보다 위법한 지시를 하지 않는 게 먼저라는 당연한 상식이다.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공무원의 ‘영혼’을 지켜줘야만 임기 후 박수받으며 떠나는 ‘길’이 열린다. 이를 실행하는 것은 권력ㆍ권한을 가진 자(者)의 몫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