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3:03 (금)
외모 지상주의의 폐해
외모 지상주의의 폐해
  • 이유갑
  • 승인 2017.11.23 22: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유갑 (사)지효청소년인성교육원 이사장 / 전 경남도의원ㆍ심리학박사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라고 읊었던 미당 서정주 선생의 ‘푸르른 날’이라는 시 구절을 떠올리면서 가을을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황홀한 아름다움을 남기고 가을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취업준비에 매달리면서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한 수많은 청년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마음이 무척 아프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기성인들의 잘못된 사회적 인식을 바판하는 ‘루키즘(Lookism)’이라는 시사 용어가 떠오른다. 여러 해 전에 미국 뉴욕 타임즈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쉐파이어(William Saphire)라는 사람이 자신의 칼럼에서 이 단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우리말로는 ‘외모 지상주의’나 ‘외모 차별주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칼럼니스트 역시 미국 젊은이들의 가치관 속에 ‘외모도 중요한 사회적인 능력이다’라는 인식이 분명히 있으며, 외모에 가치를 두는 정도가 자꾸 커지고 있음을 우려했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현실은 어떠한가? 모 신문사와 화장품 회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외모에 관한 한국인의 의식과 행동 조사는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15세에서 49세까지의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에서 ‘외모가 경쟁력이다’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85%였으며 ‘성형을 할 생각이 있다’는 55%로 나타났다. 그리고 ‘내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성형을 한다면 기꺼이 찬성한다’가 65%까지 나왔다. 이 연구의 결과들은 ‘대한민국은 성형 공화국’이라는 말이 사실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언제부터인가 ‘얼짱’이나 ‘몸짱’이라는 말들이 자주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익숙한 단어가 돼버렸다. 최근에 평범한 가정주부의 잘 다져진 몸매가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또 실제로 만나보면 애처로울 정도로 가냘픈 걸그룹의 아이돌 스타가 TV 화면을 장악하면서 온 나라가 헬스의 열풍에 휩싸이게 되고 몸짱이 오로지 전부인 시대에 접어든 느낌이다.

 얼굴에 이어서 몸매가 그 사람의 가치나 우열을 결정하는 외모 지상주의가 도래했고, 상업적인 속성으로 가득 찬 방송 매체에서는 끊임없이 비현실적인 모델을 내세워서 유혹함으로써 보통의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부조리한 사회 풍조이고, 후세대들에게 결코 물려줘서는 아니 될 잘못된 유산이다.

 사회심리학에 ‘후광 효과(Halo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한 개인의 어떤 능력이 출중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들을 다 좋게 보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서, 용모가 빼어난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의 성격도 좋고 지적인 능력도 뛰어나고 사교성도 있고 집안 형편도 좋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후광효과(後光效果)’는 합리적, 논리적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히 틀린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심리 현상이기 때문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모 지상주의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건강한 사회적 가치관을 다시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의 외모가 뛰어나거나 신체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더 좋은 평가를 받는 심리적인 속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정도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희생하더라도 자기만족을 위해서 또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려 하고, 더 뛰어난 몸매를 가꾸려고 한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이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이 외모 지상주의를 극복하려면 제일 먼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멋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특징들을 찾아서 이것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신체적인 매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과 다른 개성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젊은이들이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인공적인 미의 기준에 자신을 자꾸 꿰맞춰 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잘 가꾼 내적인 매력은 그 사람의 외모에 아름다움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