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0:47 (목)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김성곤
  • 승인 2017.11.26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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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곤 교육학 박사

 감사만이/ 꽃길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걸어가는/ 향기나는 길입니다// 감사만이/ 보석입니다// 슬프고 힘들 때도/ 감사할 수 있으면/ 삶은 어느 순간/ 보석으로 빛납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감사예찬의 일부다.

 얼마 전 어머니의 기일이 지나갔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 당시 어머니 나이 60세셨고 내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새벽 2시경 동생의 전화를 받고 동생이 사는 광양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의식이 없었고 “엄마”라고 불러도 눈조차 뜨지 못하셨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눈도 뜨지 못하시는 어머니의 귀에 대고 “엄마 우리 남매들 키운다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답도 못 하시는 어머니의 감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눈물이 나의 감사에 대한 대답이었음을 확신한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와 마지막 작별을 했다.

 너무 슬프면 눈물도 나지 않는 건지? 장례식 내내 울기만 하던 동생에 비해 나는 별다른 통곡도 하지 않았는데 정작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머니가 더 그리워지는 것은 웬일일까?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것을 하나 꼽으라면 엄마와 딸이 그리고 엄마와 아들이 함께 정을 나누는 따뜻한 모습들이다. 정말 부럽다.

 아직도 어머니가 없는 세상은 가끔씩 나를 고아처럼 느끼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데 신기하게도 길을 가다 어머니를 만날 때가 있다. 뜨거운 여름 양산을 쓰지 않고 길을 가다 보면 지나가시는 어머니께서 “얼굴 그을린다” 하시기도 하고 갑자기 내린 비를 우산 없이 맞고 가는 모습을 보면 “비에 머리 젖으면 감기 걸린다”라고 말 하시는 어머니도 계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직 세상에 살아계신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 온다.

 신문에선가 방송에선가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가 결혼이주여성들을 친 딸처럼 돌보는 모습을 봤다. 아픔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누군가의 어머니였던 사람이 내 자식이 아닌 누군가의 어머니가 돼 준다는 것은 참 위대하고 감사한 일이다.

 나에게도 두 명의 자녀가 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내 아이들만 사랑한다면 사랑에 대한 너무 작은 가치일 것이다. 세상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향해 진정성 있는 태도로 살아갈 때 아름다운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1985년 8월 12일 15명의 승무원과 509명의 승객을 태우고 도쿄(東京)를 출발해 오사카(大阪)로 향하던 일본항공(JAL) 소속 보잉 747 점보기가 비행 도중 추락해 비행기에 타고 있던 524명 가운데 520명이 사망한 사고를 기억한다. 사고 후 죽음을 직감했던 순간 승객들 대부분이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는 온통 “감사하다”,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사고 소식과 사망자들의 유서의 내용들이 전파를 타고 전해졌을 때 우리는 함께 슬퍼하고 아파했다. 얼마 전 창원터널에서도 큰 사고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사고 직후 터널을 통과했다. 터널을 통과할 당시는 구급차들이 터널 쪽으로 급하게 달려가도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고 터널을 지나왔고 김해 도착해서야 뉴스를 통해서 사고 소식을 알게 됐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 삶의 주위를 서성이는 죽음은 우리에게 언제 닥칠지 모를 불청객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죽음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죽음을 생각하면 겸손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죽음의 순간까지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정말 최악이다. 부족한 나를 용서하고 나를 용서하는 그 마음으로 다른 사람도 용서하고, 나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다른 사람도 보듬어 사랑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며 느낀 것이 있다면 세상 끝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적었다. 말 한마디 할 수도 없었고 눈조차 뜰 수 없었다.

 나의 말 못 할 임종을 대비해 나의 아이들과 그리고 세상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미리 전하고 싶다. 나의 자녀로 태어나고 잘 자라줘서 감사하고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나와 함께해 줬던 수많은 인연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하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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