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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우리 풍류에 빠져 전통 ‘회추놀이’ 부활 꿈꾸지요
뒤늦게 우리 풍류에 빠져 전통 ‘회추놀이’ 부활 꿈꾸지요
  • 황현주 기자
  • 승인 2017.12.10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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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무척풍류국악원 금아 박숙자 선생
▲ 박숙자 선생은 “무대 메인에 서는 고수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이 잘 맞아떨어져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맛본다”고 말했다. 사진은 대금산조 공연을 할 당시 모습.

2012년 국악원ㆍ2013년 예술원 설립

밀양 백중놀이ㆍ감내게줄당기기 이수

고수 이치종ㆍ인간문화재 김청만한테 배워

“고수와 잘 맞춰 공연한 후

온몸에서 짜릿한 희열 느껴”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진 시대다. 다소 느릿느릿하고 장기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완성되는 전통문화를 번잡하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일부 전통문화는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까지 놓이게 됐다.

 불혹을 넘긴 늦은 나이에 우리 전통 풍류의 가치를 알아보게 된 금아(錦牙) 박숙자 무척풍류국악원 단장은 점차 끊어져 가는 우리 풍류를 이어나가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아끼지 않은 지역 인사다. 그녀는 국가 중요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된 백중놀이와 경남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감내게줄당기기 이수자로 지정돼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허성곤 김해시장으로부터 ‘살기 좋은 도시 김해 만들기’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박 선생이 운영하고 있는 무척풍류예술단은 김해 생림면 생철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 2012년 국악원과 2013년 예술단이 설립됐다. 장구 등 타악기 장단을 배우려는 15여 명의 단원들이 소속돼 있으며, 김해 문화의전당 공연 등 큰 무대공연을 비롯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경로당 등 노인들을 상대로 한 풍류 봉사 활동을 다니면서 지역사회 전통문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박 선생은 판소리꾼이나 가야금, 대금 등 산조 공연을 할 때 곁에서 북과 장구 등 타악기를 통해 리듬과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흥을 돋워주는 ‘고법’이다.

▲ 밀양 전통놀이이자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백중놀이에 참가해 장구를 연주하는 박숙자 선생의 모습에서 전통문화 계승자다운 뿌듯함이 엿보인다.

 “나는 만학도예요. 나이 마흔이 넘어서 우리 소리와 가락, 국악을 알게 됐어요. 그런 만큼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죠. 남편의 반대는 말로 이루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지금은 이렇게 번듯하게 집도 짓고, 내가 살고 있는 생철마을 중심으로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한 판 신명 나게 즐기는 음악회도 열고, 단원들도 가르치고 그렇게 재미있게 살고 있어요.” 박 선생이 살고 있는 김해 생림면 안양로 46번지에는 마당을 중심으로 한창 집수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고향인 밀양과 가까운 이곳에서 국악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 그녀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한 성당에서 교인으로 활동하던 중 성당의 제안을 받고 국악에 입문했다고 한다. 당시 평범한 가정주부에 불과했던 선생은 항공 정비사인 남편 덕분에 제주도에서 살기도 했고, 그곳에서 우도농악을 알게 되면서 매료됐다. 그러던 중 남편이 부산으로 발령받은 것을 계기로 김해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밀양 백중놀이 예ㆍ기능보유자인 하보경 선생을 보게 됐어요. 텔레비전을 보는 내내 어린 시절 아랑제나 백중놀이를 즐기면서 지낸 옛 생각이 나서 감회가 너무도 새로웠죠. 그런데 하보경 선생의 손자인 하용부 선생이 저의 초등학교 동창인데, 그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와 밀양 백중놀이 전수자로 소개되는데 거기서 마음이 동한 거죠.” 밀양 백중놀이는 예로부터 머슴들이 음력 7월 보름경 일명 용날에 해당하는 날을 택해 지주들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으로 하루를 즐겁고 유쾌하게 노는 데서 연유한 두레굿으로, 밀양 지역에서는 이날을 ‘머슴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높은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탓에 서민예술의 표본으로 인식됐고, 농신제(農神祭)ㆍ작두 말타기ㆍ춤판ㆍ뒷놀이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농신제는 먼저 나팔을 길게 서너 번 불면 농악이 울리면서 오방진굿을 하고 고사 터를 깨끗이 하는 잡귀막이굿에서 시작된다.

 박 선생이 말한 고(故) 하보경 선생은 밀양 백중놀이 예ㆍ기능보유자로 민속놀이 백중놀이를 보존하는 데 일생을 바쳤을뿐더러 양반춤ㆍ범부춤ㆍ오북춤ㆍ병신춤 등 전통춤을 발전ㆍ계승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인간문화재다. 현재 선생의 뒤를 이어 손자 하용보 선생이 밀양 백중놀이의 명맥을 잇고 있다.

 지난 2002년 김해에 정착한 박 선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밀양 백중놀이를 배우기 위해 백중놀이 보존회를 찾았다고 한다. 백중놀이에 큰 관심과 애착을 보이기 시작하기 시작하면서 이듬해 백중놀이에서 북과 장구를 치며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취미로 시작한 풍류 예술이 박 선생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순간이다.

 그러나 나이 지천명이 다가오면서부터 사물놀이에 자연스레 손을 놓게 됐다. 열정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무거운 장구와 북을 어깨에 맨 채로 몸동작을 크게 하는 것이 그녀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는 포기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 다가왔을 때 그녀는 우연히 동래학춤의 대가이자 전수 조교인 이치종 선생을 만나게 됐고, 그를 만나면서 장단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단은 춤과 민요, 가야금, 대금 등 연주가 시작되면 이를 반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녀는 이것을 계기로 고법에 입문하게 됐다.

 “만학도이기 때문에 더 분발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이 자리까지 오지도 않았다고 생각해요. 당시 이치종 선생 밑에서 타악기를 배우던 사람들이 15여 명 정도 됐는데 1년 반 정도 지나고 보니 저 한 사람밖에 남지 않은 거예요.” 이치종 선생에게 배우던 박 선생은 곧바로 그를 통해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보유자로 지정된 김청만 선생을 소개받게 됐다. 박 선생은 일 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 7박 8일 동안 김청만 선생의 집에 살다시피 하며 고법을 수강 받았다. 김해에서 충북 논산까지 무려 7년을 자신의 차량으로 무거운 장구와 북을 싣고 떠나야 했지만 그 시간이 그의 인생에 가장 큰 행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 박숙자 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인 장구를 연주하고 있다.

 “선생이 가르치신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장단이란 대박, 중박, 조롱박이다. 그것만 잘 해도 된다’ 하시는 것이에요. 그 말의 뜻은 장단이란 대박처럼 너무 큰 소리로만 내는 것도 안 되고, 조롱박처럼 너무 작은 소리로만 내는 것도 안 된다는 뜻이죠. 무엇보다 고법은 고수와의 조화와 화합이 잘 이뤄져야 진짜 완성된 국악 한 편이 나오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명고는 없다’는 말이 실감돼요.” 한창 연주를 하다가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박 선생은 “고수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이 잘 맞아떨어져 ‘기깎이(곡이 진행되는 중에 리듬을 덧입히거나 패턴을 달리하는 것)’가 됐다는 것을 느꼈을 때죠. 그럴 때 온몸에서 느껴지는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저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는 꿈보다는 전통 ‘회추놀이’를 다시금 부활시키는 것이 저의 최종 꿈이죠. 모두가 어디서든 신명 나게 즐길 수 있는 우리 풍류. 저부터 만들어 나가야 후대들도 소중함을 깨닫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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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아 박숙자 선생 프로필

ㆍ1955년 밀양 출생

ㆍ국가지정중요문화제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이수자

ㆍ경남도지정문화제 제7호 감내게줄당기기 전수자

ㆍ(사)새울 전통타악기 진흥회 고법 및 장단장구수료

ㆍ문화체육관광부장관인증 문화예술교육사 자격

ㆍ2017년 김해시장 표창장 수여

ㆍ현 (사)한국국악협회 김해지부 부지부장

ㆍ무척풍류예술단ㆍ국악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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