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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에 가려진 부성의 눈물
2017년 12월 11일 (월)
이영숙 7618700@kndaily.com
 
   
▲ 이영숙 담쟁이 가족상담 부모교육 연구소 소장
 
 

 몸에서 나오는 건 다 좋은 것이다. 나와야 할 것들이 나오는 것이다. 나와야 할 것을 참으면 몸에 병이 생긴다. 눈물을 참으면 마음에 병이 생긴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지 못하면 제일 먼저 몸이 반응한다. 몸도 마음 따라 병이 나고 만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다보면 개인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사회의 억압을 견뎌내야 할 일이 허다하다. 우리 자녀 세대도 별반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도 만만치는 않지만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 또한 우리의 부모세대에 비하면 만만치가 않게 된 게 현실이다. 처음부터 상자 속 쿠키를 똑같이 나눴다면 별문제가 없었겠으나 남아선호사상이 깊었던 사회에서 많은 양의 쿠키를 차지했던 남자들이 이제는 쿠키를 내놔야 하는 사회문화가 됐으니 왠지 뺏기는 듯 억울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월급은 통장으로 지급되고 그 통장은 아내가 관리하는 게 보통이다. 열심히 노동을 하고도 경제권을 갖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날 리 없다. 아이들은 자랄수록 제 방문을 닫고 들어가 눈도 맞추지 않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손을 내미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과거엔 언성만 높아져도 온 식구가 눈치를 살피고 밥상이라도 엎어지면 집안 분위기가 살얼음판이 돼 버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 아버지가 내심 부럽기도 할 것이다.

 여자는 변화에 민감하고 적응하는 속도가 빠르다. 남자는 변화에 둔감한 편이다. 그러니 가정에서 도태되기가 쉽다. 오직 일과 관련된 분야의 정보만 받아들인다. 직장 내의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상황 때문에 가족에게서 점점 더 소외되고 퇴직이 가까워지면 고립감과 우울감은 극에 달한다. 그리고 원망하게 된다. 가족 모두에게 슬픈 일이다. 부모교육 특강을 하러 가보면 대부분의 청중이 어머니다. 낮 시간이어도 그렇고 밤 시간이라 해도 아버지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어쩌다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화들짝 반가워진다. 자녀와의 관계 맺기는 대부분 어머니의 몫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조부모의 경제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그리고 어머니의 정보력이 있어야 자녀를 일류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말은 공공연히 떠돈다. 그러니 교육장에는 어머니 천지다. 오죽하면 아버지들만 모아놓고 교육하는 게 소원이겠는가? 남자는 변화에 둔감하지만 변화하기로 작정하면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노력을 게을리했는가? 기회마저 박탈당했는가? 질문의 대답은 아버지 자신만이 알 것이다.

 개인이 노력을 게을리했다면 지금부터 다르게 살기로 결정하면 된다. 관심만 가지면 꼭 교육현장에 나오지 않더라도 정보는 널려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연평균 근로시간이 2위인 우리의 현실은 사회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노동환경이 열악함에도 근로시간 단축 법안 통과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가족이 건강하려면 가족 구성원이 건강하게 분화돼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가족에게 아버지의 자리가 있어야 된다. 일 때문에 부재중이었던 아버지의 역할을 어머니가 대신하다 보니 아버지는 소외되고 어머니는 피로감이 누적되며 자녀 또한 아버지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아버지의 고단함을 알게 해줘야 한다. 자녀에게 아버지의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머니 자신에게조차 그렇다. 부부의 문제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애씀은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에 가려져 무가치하게 변질돼 간다. 그래서 아버지는 눈물을 삼킨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고 살아왔다 여겼는데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서럽겠는가? 억울하고 서러울 때는 울어야 한다. 어디라도 기대어 울 자리가 있어야 한다. 태어나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교육을 받은 남자도 그러하다. 아버지의 눈물은 무죄다. 실컷 울고 난 후라야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버리고 가족에게 다가갈 용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도 변화해야 한다. 딸의 머리를 땋아주기 위해 유튜브를 보고 연습했다는 어느 아버지처럼 스스로 변화하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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