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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와 가족사랑(3)
2017년 12월 14일 (목)
이영조 7618700@kndaily.com
   
▲ 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나는 차분히 설명을 했다. “지금 본인의 건강상태는 나빠 보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왜곡된 시선으로 인해 건강은 점점 더 나빠질 겁니다.” 그녀는 내 말을 사뭇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병을 고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입니다. 본인이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약을 처방해도 몸에서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특히 마음을 치료하는 상담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은 모두 병에 걸린 건가요?” 그녀는 아직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살을 빼려고 먹은 음식을 억지로 토해내는 방법을 쓰지는 않지요.” 남들보다 특별한 방법을 쓰고 있는데 심각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줬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그녀는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말에는 갈망보다는 귀찮다는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나는 현재 그녀가 하고 있는 다이어트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다시 설명을 했다. 피동적으로 하는 것보다 마음에서 우러나 하는 행동이 수반될 때 치료 효과가 커진다는 것을 알기에 서두르지 않고 그녀의 마음을 돌려놓는데 시간을 더 들이기로 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조금 전에 짜증 섞인 말투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던 억양과는 달리 수용적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그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것을 확인하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모래 상자의 뚜껑을 열고 모래를 만져보라고 했다. 그녀는 모래 한 줌 떠서 양 손바닥으로 비비면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 떨어지는 모래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한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하더니 이번에는 모래 면에 양손을 대고 좌우로 부채모양을 그리듯 모래를 쓰다듬으며 모래와의 접촉을 이어가면서 무념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나직이 속삭이듯 물었지만 그녀는 듣지 못했다. 나는 다시 묻지 않고 그녀가 누리는 자유 시간을 바라보며 함께 즐겼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얼굴은 평온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스스로 생각 속에서 걸어 나왔다. 손에 묻은 모래를 조심스럽게 털어내며 그녀가 물었다. “선생님, 저 식습관 고쳐보고 싶어요. 과연 제가 고칠 수 있을까요?” 나는 화답을 했다. “물론이지요.” 스스로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녀가 고마웠다.

 상담을 마칠 무렵 그녀에게 예쁜 노트 한 권을 건네줬다. 갑작스러운 선물에 놀란 표정으로 “이거,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하면서 예쁘다고 연신 노트를 매만졌다. “노트를 펼쳐 보세요. 그 노트의 이름을 다이어트 다이어리라고 이름 지었어요.” 노트를 펼쳐본 그녀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이걸 쓰는 거예요?…” 그녀는 노트를 가득 채우고 있는 양식을 자세히 보며 말했다. “그래요. 그 안에 매 끼니마다 먹은 음식을 기록하는 거예요. 음식의 종류, 양, 될 수 있는 한 자세히 적어야 해요. 그리고 그 음식을 먹을 때 기분과 당시 감정 상태, 음식을 먹고 난 후에 밀려오는 기분 상태 이런 것들을 적도록 돼 있어요. 어때요 할 수 있겠지요?” “네, 해볼게요.”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수월했다. 노트를 받아들고 상담실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은 사뭇 비장해 보였다.

 일주일 후 나는 그녀와 다시 만났다. 가벼운 목례를 하며 내 앞에선 그녀는 자신감이 베어났다.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봐요?” 나는 이렇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뜬금없는 인사에 피식 웃었다. “뭐, 특별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말끝을 흘리는 대신 내게 다이어트 노트를 건네줬다. 노트를 펼쳐본 나는 그녀에게 미소와 함께 칭찬을 해줬다. “이것들을 실천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군요. 정말 잘했어요.” 노트에는 힘든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났고 그 노력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매주 만나는 그녀의 다이어트 일기에는 그녀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트에는 많은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트 기록의 변화만큼 그녀의 얼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얼굴에 살이 붙어 포동 해졌고 얼굴색도 화색이 돌아 그 전의 날카로운 인상은 한층 여유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 요즘 제 마음이 아주 편안해요. 그래서인지 기분도 좋고 사람들에 대해 경계하거나 밉고, 서운한 마음도 없어졌어요.” 그녀의 이 한마디가 상담의 종결을 의미했다.

 한없이 날카롭게 날이 세워졌던 그녀의 과거 시간들이 영상처럼 지나갔다. 더불어 건강해진 모습과 자신감이 충만해진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또 하나의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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